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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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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는 신비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각종 미스터리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모델은 누구인지, 정확한 제작 시기는 언제인지, 미소의 의미는 무엇인지….
누군가는 이 작품이 다 빈치의 자화상이라고 말한다. 언뜻 보면, 그의 드로잉 ‘자화상’ 속의 얼굴과 비슷하다. 매춘부 또는 임신부를 그린 작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 추정일 뿐이다. 이는 위대한 작품이 치러야 할 운명적인 유명세이기도 하다.
도난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1911년 8월 21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휴관일이었다. 이날 아침 한 청년이 전시실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낸 뒤 태연히 걸어 나갔다. 경비원들은 박물관 직원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작품을 떼 가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범인은 계단으로 숨어들었다. 거기서 액자를 뜯어내고 그림을 둘둘 말아 옷에 감춘 뒤 박물관을 빠져 나갔다. 도난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범인은 2년 뒤인 1913년 12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놀랍게도 20대의 이탈리아 화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나리자’를 조국의 품에 돌려주려고 했다. 이탈리아의 보물을 약탈해 간 나폴레옹에 대한 복수의 표현이었다.”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 범인은 피렌체의 한 고미술상과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거액을 주면 ‘모나리자’의 고향인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 작품이 걸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모나리자’는 피렌체 로마 밀라노에서 전시되었고 1914년 1월 루브르박물관으로 돌아갔다.
그 후 ‘모나리자’가 해외로 나들이한 것은 단 두 번. 1963년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 1974년 일본 도쿄에서 전시됐다. 도쿄 전시 때엔 도난에 대비해 장갑차가 수송차량을 경호했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몰리다보니 1인당 관람 시간을 16초로 제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화들은 결국 다 빈치와 ‘모나리자’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것이다. 다 빈치와 ‘모나리자’는 500여 년 동안 인류를 즐겁고 풍요롭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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