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고향이 그때 그때 달라요”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23분


코멘트
“검사들에겐 잊어야 할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그래야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다.”

4일 검사장 인사가 단행되기 직전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수구초심이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

이 간부의 얘기는 검사가 ‘고향 덕’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여느 조직처럼 검찰도 인사철엔 몸살을 앓는다. “누가 동향(同鄕)의 국회의원이나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식의 소문이 파다하다.

4일 검사장 인사 이후 검찰 내에선 몇몇 인사의 고향이 입에 오르고 있다. 법조인들의 신상에 대한 자료를 수록한 책자인 ‘법조인대관’에 기록된 이들의 출신지와 법무부가 내놓은 인사자료에 기록된 출신지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법조인대관은 사법시험 합격 직후 본인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쓰인다. 반면 법무부 인사자료는 비교적 최근에 본인이 기재한 것이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다를 경우 그 가운데 한 곳을 자신의 고향으로 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은 나이가 들면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뀐 고향이 공교롭게도 정권의 근거지와 일치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역 편중 인사가 횡행하던 시절에 만연했던 그 같은 사례들은 아직도 종종 눈에 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검사장은 “TK(대구경북) 정권 때에 검찰에 입문했는데 당시 주변에서 ‘할아버지가 살았던 경북을 출신지로 써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과거 한 검찰 고위간부는 고향이 영남과 호남으로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자신의 출신지를 정권의 근거 지역에 맞추는 것 아니냐는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검찰의 영원한 숙제는 정치적 독립이다. 김종빈(金鍾彬) 신임 총장은 취임사에서 “인사 혜택을 위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검사는 가장 무서운 내부의 적”이라고 했다. 검찰이 정치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검사들 스스로 출신지를 바꿔 가며 정치권에 뭔가를 기대하는 모양새를 떨치는 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조수진 사회부 jin06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