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정모]로봇연구, 심리학이 필수인데…

  • 입력 2005년 1월 21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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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외에서 인간과 닮은 로봇을 만드는 일이 한창이다. 흔히 로봇의 기본 개념과 이론적 모형이 기계공학이나 컴퓨터과학 등 이공계 학문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인문사회과학에 속하는 심리학과 인지과학이 기본이다.

공상과학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을 떠올려보자. 이 로봇은 대상에 대한 불투명한 이미지로부터 몇 단계의 계산 과정을 거쳐 상당히 구체적인 이미지를 뽑아낸다. 이 영화를 보면 마치 터미네이터가 인간과 다른 시각 처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런 이미지 계산 방법은 컴퓨터과학자가 만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일은 한 인지심리학자가 제시한 인간의 시각계산이론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세계적인 인공지능센터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예를 보자.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가진 레오나르도, 공간이나 대상에 대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며 자신의 감각운동 행위를 조작하는 리플리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키스멧이란 로봇은 인간과 얼굴을 맞대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을 줄 안다.

이처럼 공간과 대상의 지각 및 언어적 지칭의 이해, 얼굴 표정을 비롯한 정서표현, 인간과의 상호작용 등의 기본 개념과 메커니즘은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서구의 로봇 연구그룹에는 심리학자와 인지과학자가 항상 공동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학계에서 ‘발달로보틱스’라는 신생 학문분야가 각광받고 있다. 전통적 로봇연구의 목표는 특정 분야의 특정 문제만 해결하는 것이었다. 자동차공장에서 끊임없이 부품을 조립하는 일을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발달로보틱스는 최소한의 지식만 부여받고 만들어진 로봇이 마치 인간의 아기처럼 스스로 작동하면서 새로운 정서적, 인지적, 사회적 능력을 습득해 발달해 가는 연구를 수행한다. 여기에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저명한 발달심리학자인 피아제나 비고츠키의 이론이 도입되고 있다. ‘피아제 로봇’이나 ‘비고츠키 로봇’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연구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상무부와 과학재단은 2001년 저명한 과학자들과 정책연구자들에게 미래 과학기술이 어떤 틀에서 추진돼야 할지를 물었다. 조사 결과 향후 최소 20년 동안 추진해야 할 4대 핵심 축으로 나노과학, 생명과학, 정보과학, 그리고 인지과학이 선정됐다. 물론 이들 핵심축이 서로 융합하며 발전하는 일이 필수다. 캐나다는 이에 자극 받아 1년 후 비슷한 틀을 제시했다. 유럽연합은 2004년 9월 미국의 틀에 유럽의 특성을 가미해 ‘유럽지식사회를 위한 융합과학기술(CTEKS)’ 안을 제시했다.

이런 세계적 추세를 보면 한국의 상황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인지로봇, 진화로봇, 발달로봇 등 첨단 로봇을 연구해 국제적으로 경쟁해야 할 한국의 이공계 학생들이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기본지식을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습득할 수 있는 교육체제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30여 년 전부터 과학교육 과정에 심리학과 인지과학이 필수 교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의 이공계 학생들이 10년 후 심리학과 인지과학에 무지한 채 국제무대에서 고생할 생각을 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루빨리 국가 과학교육 정책 차원에서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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