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47>卷五. 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2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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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초나라 원병(援兵) 3만이 비어있는 우리 진문(陣門)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왕(韓王)과 부관(傅寬) 장군의 좌군(左軍)을 가볍게 돌파해 지금은 대장군께서 이끌고 계시는 우리 전군(前軍)과 접전 중이라고 합니다.”

그 같은 급보에 애써 버티던 한왕 유방도 드러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대장군 한신이 짜놓은 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게 한층 뚜렷해진 느낌이었다. 중군(中軍)도 움직임이 불안해졌다. 역상과 근흡이 산동(山東) 병사들로 짜여진 정병 3만을 이끌고 한왕을 지켰으나, 초나라 군사들의 기치와 함성이 점점 한왕 가까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함성이 울리며 초나라 군사 한 갈래가 한군(漢軍) 중군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무섭게 몰아붙이는 패왕의 기세를 막느라 얇아진 옆구리를 파고든 듯했다. 소공(蘇公) 각(角)과 대사마 조구(曺咎), 그리고 위장(魏將) 옹치(雍齒)가 이끄는 원병이었다.

“이놈 장돌뱅이 유계(劉季)야, 여기 옹치가 왔다. 내 너를 사로잡아 풍읍(豊邑)의 원한을 씻으리라!”

옹치가 그렇게 외치면서 대뜸 유방이 있는 중군기(中軍旗) 쪽으로 달려왔다. 풍읍의 원한이란 패공(沛公) 시절 유방이 항량(項梁)의 군사 5000을 빌려 옹치에게서 풍읍을 뺏고 그를 사로잡으려 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먼저 패공 유방의 믿음을 저버린 것은 옹치였으나, 그 사람됨이 워낙 모질고 악해 오히려 유방에게 원한을 키워온 듯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은 옹치를 알아본 한왕의 태도였다. 예전에도 한왕이 그토록 싫어했고, 배신한 뒤에는 잡히기만 하면 반드시 죽여 분풀이를 하리라 별러왔던 옹치였으나, 그날 한왕에게 준 느낌은 뜻밖에도 두려움과 절망이었다.

(저놈이 우리 중군까지 뛰어들었으면 끝이로구나. 차라리 패왕에게 사로잡히면 목숨을 빌어볼 수도 있지만, 저놈과 싸우다 잘못되면 아무것도 빌어볼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생각이 들며 온몸에서 힘이 죽 빠졌다.

놀란 노관과 하후영이 3000 갑사(甲士)를 내몰아 그들이 이끄는 초나라 원병을 막아냈다. 워낙 한군 깊숙이 뚫고 들어오느라 이끈 군사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처음 덤벼들 때의 기세와는 달리 그들 세 초나라 장수는 곧 한군에게 밀려났다.

그걸 본 한왕이 겨우 한숨을 돌리는데, 이번에는 역상과 근흡의 3만 군이 겹겹이 막아서 있던 곳을 한 떼의 인마가 단도처럼 찔러왔다. 한왕이 거기 있는 것을 안 패왕이 모든 힘을 그 한곳에 모아 맹렬하게 치고 든 것이었다.

“비켜라. 길을 내주지 않으면 모두 베어 넘길 뿐이다.”

맨 앞에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채 오추마를 휘몰아 덮쳐오는 것은 다름 아닌 패왕 항우였다. 그 왼편에서는 종리매와 용저, 환초 같은 맹장들이 패왕이나 다름없는 기세로 달려왔고, 오른쪽에서는 항타(項타) 항양(項襄) 항장(項壯) 같은 족중(族中)의 용사들이 질세라 창칼을 휘둘렀다.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파죽지세]라더니, 그들이 바로 그랬다. 그들이 한나라 중군을 쪼개고 지나가며 낸 길로 수만의 초나라 정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틀렸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자. 대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를 서쪽으로 물리게 하라!”

한왕이 그러면서 먼저 말머리를 돌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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