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근]‘출자규제’ 언제까지 할건가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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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론자들에게 시장은 늘 미덥지 못하다. 따라서 시장 개입에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지적 오만은 시장 실패를 정부 실패로 대체하기 쉽다. 정부 실패는 시장 실패보다 더 유해하다. 우리가 시장을 신뢰하고 보육해야 하는 이유는 시장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불필요한 노파심▼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처리를 서두르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시장과 대기업에 대한 노파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핵심은 출자규제의 유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집단의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과 동반부실화를 차단하고 소유 및 지배구조의 왜곡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출자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출자규제를 폐지하면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은 ‘학습조직’으로서의 기업의 속성을 무시한 예단일 뿐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팽창욕구를 제어하지 못하고 문어발식 확장을 추구한 결과는 이미 외환위기를 통해 학습했다. 그리고 ‘지분평가법’에 의해 피출자회사의 경영성과가 출자회사의 수익에 반영되기 때문에 무분별한 지배력 확장은 시장의 힘에 의해 규율된다. 사업 포트폴리오는 ‘현장지식’에 밝은 기업가의 경영판단 영역으로, 정부가 판정할 일이 아니다.

동반부실화를 방지하는 보다 유효한 정책은 채무보증금지다. 기업구조 개혁 차원에서 이미 채무보증을 금지했기 때문에 출자규제가 동반부실화를 방지하는 데 추가적으로 기여할 여지는 적다. 더욱이 소수 주권이 상당히 ‘실질화’되었기 때문에 부실계열사를 단순 지원하기 위한 출자는 가능하지도 않다. 한편 대기업의 경우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총수의 지분이 낮아졌지만 사업의 모태가 변한 것은 아니다. 사업 주체에게 경영권이 귀속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소유와 지배의 괴리로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개연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익추구는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이해상충의 문제이기 때문에 출자규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지배주주와 관련된 거래의 공시 강화, 부당내부거래 차단 및 집단소송제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게 효율적이다. 출자규제는 사익추구 행위를 우회적으로 규제하는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출자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에만 적용된다. 대마견제(大馬牽制)론인 셈이다. 과거에는 이런 경제력 집중 억제가 나름대로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적을 달리하는 글로벌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2003년 현재 500대 글로벌 기업을 4개 이상 배출한 15개국 중 우리 기업의 평균 자산총액은 373억달러로 15개국 중 제일 낮다. 이제는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출자규제는 투명성 제고와 소유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소유 지배구조 개선은 공정거래법의 목적 사항이 아니며, ‘경쟁촉진을 통한 소비자 후생증진’이라는 공정거래법의 본령과도 거리가 있다.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경쟁과 소비자 후생이 어떻게 촉진되고 증진되는지 불분명하다.

▼소비자-투자자의 선택 믿어야▼

그뿐 아니라 출자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영판단 문제이기 때문에 출자규제는 민간기업의 ‘사(私)영역’에 대한 침해다. 공정위는 지배구조가 개선되고 투명경영의 증거가 나타나면 규제를 풀겠다고 한다. 그러나 투명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의 증거를 어떻게 ‘객관화’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여건 미성숙 등의 상황인식은 규제의 상설화를 가져오고, 규제의 타성화는 공정거래법이 지향하는 시장규율의 작동을 지체시킨다.

경제의 권력은 소비자와 투자자로부터 나온다. 공정위의 소임은 소비자와 투자자의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거의 시각에 집착해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개혁일 수는 없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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