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함인희/‘제2의 宋군’ 막으려면…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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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하루 이틀 지나면서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것에 겁이 났지만, 나중엔 오히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것이 나았어요.” 돌아가신 어머니를 옆에 두고 6개월이나 홀로 지내 왔던 15세 중학생 소년의 사연을 접하자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기막힘에 마음이 먹먹해 온다.

▼가족-이웃 전통적 개념 사라져 ▼

송군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가까스로 털어놓은 한두 마디 말만으로 저간의 깊은 슬픔과 아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의 굳게 닫힌 마음속 분노와 좌절을 그 누군들 눈치 챌 수 있겠는가.

소년의 사연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곳곳에서 소년을 돕겠다는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 한다. 진정 고마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만큼 정이 많은 이들이 또 있을까 싶다. 매년 반복되는 태풍 피해 때마다 돼지저금통 털어 수재의연금 내고 전국 방방곡곡의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복구 현장으로 모여드는 우리 아니던가. 구세군 자선냄비 소리가 들려오는 12월이면 준조세 성격의 성금과는 별도로 주머니 속 지폐든 동전이든 보태면서 이유 없이 시린 가슴을 달래곤 하는 우리 아니던가.

한데 진정 다정(多情)도 병인 듯, 송군이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담임선생님의 무책임을 지탄하는 네티즌의 목소리엔 분노가 가득하고(이는 나중에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아무리 제 가족 건사하기도 빠듯하다지만 그래도 너무했던 이웃과 친지의 무관심에 가슴 치는 이들의 목소리엔 흥분이 묻어나온다. 그러느라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 냉정하게 짚어보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볼 새도 없이,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린다. 덕분에 우리는 늘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 온 것만 같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인, 즉 생활양식은 근대화·서구화의 길을 따라 조직돼 왔는데, 문제해결 방식은 여전히 가족 친지 이웃의 미덕과 포용에 호소하는 전통성을 고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생활양식과 사유양식의 지체(遲滯) 현상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예전 자식들은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건만 요즘 것들은 효성이 부족해 부모를 버리고 있노라”고 비난한다면, 이는 오해와 무지에 다름 아니다. 우리도 ‘장수가 축복’이던 시대를 지나 불과 15년 후엔 인구 100명 당 65세 이상 비율이 14, 15명에 이르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그렇다면 노인은 진정 새롭게 등장한 사회집단이라 봐야 하고, 자연히 부양문제의 해결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실제로 송군 가족은 물론이요, 오늘날 우리의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엄마 아빠의 지극한 애정과 자녀들의 눈물겨운 효성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서구에서 복지프로그램이 체계적으로 제도화된 시점은 가족의 전통적 기능이 약화된 시점과 맞물려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가족 위기’ 극복 복지프로그램을 ▼

한 가지 아이러니는 가족만큼 사회 변화로 인한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제도도 드물거니와 우리네만큼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저항하는 제도도 흔치 않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머리로는 보육시설도 부양시설도 받아들일 수 있건만 마음으로는 왠지 꺼려지는 것이 모두의 솔직한 심정 아니겠는가. 그런 만큼 우리의 경제적 여건과 감성적 요소를 동시에 충족시켜 줄 양질의 적절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게다.

현대인이라면 너나없이 생애주기 어느 단계에선가는 출산이든 실업이든 질병이든 노화든 위기상황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놓이게 됐다. 이들 다양한 위기를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주는 ‘포괄적 사회안전망’의 구축이야말로 국정운영의 우선순위로 올라서야만 할 것이다. 덧붙여 제2의 송군이 나오지 않도록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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