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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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박석무 지음/558쪽 1만7000원 한길사

“‘팔자백선(八子百選)’을 받았는가?”

“받았습니다.”

“‘대전통편(大典通編)’을 받았는가?”

“예, 받았습니다.”

“‘국조보감(國朝寶鑑)’을 받았는가?”

“예,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근래에 나라에서 발간한 책은 모두 받았으니 이제는 줄 것이 없구나.”

정조는 성균관 생도들이 올린 답안 중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의 답안에 늘 최고 점수를 줬고 상으로 책과 지필묵을 내렸다. 상을 너무 많이 줘서 더 이상 내려 줄 책이 없다던 이날도 정조는 정약용에게 술을 권하면서 ‘병학통(兵學通)’이란 병서(兵書)를 건네줬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국왕의 총애를 받으며 정조의 개혁에 동참했던 정약용은 정조의 죽음과 함께 1801년 전남 강진에 유배돼 18년을 보내야 했다. 강진에 내려왔을 때는 이미 죄인의 몸이었지만 앞날이 창창하던 그로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를 냉대하던 강진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고 따르게 되고 그 지역 학자들과 함께 학문에 몰두하던 차에, 그의 정신적 지주가 돼 줬던 형 약전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었다는 소식은 그를 다시 좌절로 몰아넣었다.

저자는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 상황을 면밀히 조명하여 그의 탄생부터 죽음, 그리고 사후의 평가까지 정약용이란 한 인간의 삶과 생각을 그려냈다.

철학자도 역사학자도 문학자도 아닌 ‘다산학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누구보다도 정약용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기에 적합한 필자다. 그는 이미 ‘다산논설선집’ ‘다산문학선집’ 등 정약용의 저작을 한글로 옮기고 그의 행적을 돌아보며 ‘다산기행’이란 단행본도 지은 바 있다.

정약용이 아들, 아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과 애달픔을 함께 실어보내야 했던 심경이며, 주변에서 늘 풍물과 풍속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촌요(村謠)’ ‘농가(農歌)’ ‘어가(漁歌)’ 등의 절창을 읊었다는 이야기 등 ‘다산학자’로서 저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절절하다.

형 약전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딛고 학문에 몰두해 500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기기까지, 그리고 회갑에 자신의 생을 스스로 정리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짓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서경(書經)’에 대한 연구서인 ‘매씨서평(梅氏書平)’의 개정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학자로서의 삶. 정약용을 너무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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