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442…1945년 8월15일 (1)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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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에서 동쪽으로 걸어서 세 시간, 마차로 40분 거리에 재약산이 있고 그 산기슭에 표충사란 절이 있다. 신라시대에 건립되어, 고려시대에는 1000명을 넘는 승도들이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고찰로, 경내에서 사명당 의사가 입었다는 가사, 장삼, 철탁(鐵鐸), 패도(佩刀), 선조대왕에게서 하사받은 교지 등의 유품이 보존돼 있다.

사명당, 중종39년(1544년)에 밀양군 무안면에서 태어났다. 속칭은 임응규. 본관은 풍천, 자는 이환, 사명당 외에 송운, 종봉이란 호가 있다. 마흔아홉 살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천의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고, 구마모토 성주 가토 기요마사와 세 번에 걸친 회담에 임하나 결렬, 불과 2년 뒤에 정유왜란이 시작된다. 가토 기요마사는 조선의 굴복을 요구하였으나 사명당은 이를 거부하고 다시 승병을 이끌고 치열한 전투에 돌입한다. 쉰다섯 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은 철수, 예순한 살에는 사절단으로 도일, 교토 본법사(本法寺)에서 일본의 고승과 시문을 주고받는 나날을 보내다가 후시미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회담, 포로 1391명을 데리고 귀국하는 데 성공, 두 나라에 이름을 날렸다.

8월 중순의 정오, 사람들은 사명당을 기리는 비각 앞에서 밀짚모자를 벗었다. 사명당이 몰한 지 100년이 지난 즈음 유림이 그가 태어난 곳에 가깝게 자리를 골라 세웠다는 비각이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푸름이 짙어 오히려 여느 때보다 낮아 보이는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바람은 한 점도 없었다. 남자들의 바지저고리나 여자들의 치마저고리나, 마치 빨고 짜기를 잊은 빨래처럼 무거워 보인다. 태양은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는 대신, 사람들의 그림자를 쭈글쭈글하게 태우고 있었다. 불길할 정도로 파란 하늘, 아플 정도로 무더운 날씨….

사람들은 꿈에서 막 깨어나 잠이 덜 깬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만 부릅뜨고, 헛기침 소리 하나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우뚝 선 채 한데 엉켜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한 남자가 졸음을 떨치려는 듯 머리를 흔들고, 수염이 무성한 입을 놀란 모양으로 벌렸다.

“땀인가?”

아무도 반응이 없자 남자는 불안해하며 어깨 너머로 아내를 쳐다보았지만, 아내는 두 손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도 잊고 땀이 솟는 콧잔등을 토끼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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