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443…1945년 8월15일 (2)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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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인가?” 남자는 뒤돌아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어데 있다고 그랍니까? 눈물은 눈에서 흘러나오는 거 아입니까.” 아내는 사명당의 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땀이겠지…여기저기서 솟고 있다 아이가….” 남자의 온몸에서도 비(碑)처럼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라에 중대사가 있어서 땀을 흘리는 기다.” 제일 나이 많은 노인이 흰수염을 배배 꼬면서 사명당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병될 때도, 3·1운동 때도, 내는 봤다, 봤고말고….”

“…그라믄…중대사라는 게….”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안 하더나. 그라고 히로시마하고 나가사키에 신형폭탄이 떨어졌다고, 야스다 반장이 그라더라.”

“신형폭탄이라고?”

“아직 모르나?”

“그래. 4월부터는 신문도 가끔씩밖에 안 오니까네.”

“몇 개 안 떨어뜨렸는데, 피해는 엄청나다고 하더라.”

“와 도쿄에는 안 떨어뜨렸을꼬.”

“글쎄 말이다….”

“옥음(玉音)방송이 있을 끼라고 야스다 반장 집에 몇 명이 모여 있다.”

“옥음방송이라카믄, 천황이….”

“직접 말한다 카더라.”

“중대사네…1억이 다 옥쇄하는 거 아이가.”

“내지의 위기에, 와 이 사명당이 땀을 흘리노?”

“내는 봤다, 봤고말고….”

“전부, 이 나라의….”

“조선의 위기다…조선땅에도 신형폭탄이라카는 게 떨어지는 거 아인가….”

“무슨 소리고, 아무리 연합군이라도 그런 짓은 못한다.”

“그라믄….”

사람들은 다시 사명당비를 올려다보았다. 비는 마치 태양열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뚝 뚝 땀을 흘렸지만, 아무도 그것을 닦아내려 하지 않았다.

노인은 두 손으로 쥐고, 눈을 찌푸리고 입을 우물거렸다.

“지금까지 본 중에서 제일로 많이 흘리는 기다…조선이 우예 될라꼬, 아이고 불길타.”

노인은 지팡이로 두 발 사이 땅을 툭툭 내리쳤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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