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부자는 누구인가? 브라질 상위 0.1%에 대한 인류학 보고서[딥다이브]

  • 동아일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는 동경의 대상이죠. 특히 타고난 부자, 예컨대 재벌 2세나 3세의 삶은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이 입는 것, 먹는 것, 노는 것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궁금증을 유발하죠.

좀처럼 닿기 어려운 최상위 부자들의 삶을 제 3자 시선으로 관찰해 기록한 흥미로운 책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은 아니고요. 브라질 인류학자 미셸 알코포라도가 브라질의 상위 0.1% 부자 80여 명(상위 0.01% 부자 60명 포함)을 인터뷰해 쓴 책 ‘부자들의 것(Coisa de Rico)’인데요. 2025년 8월 출간해 지난해에만 10만권 넘게 팔리며 큰 화제를 끌었죠. 흥미로운 가십과 통찰력 있는 인류학 논문이 뒤섞인 듯한 이 책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소개합니다. 아마 한국 상황과도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책의 본문을 그대로 인용한 경우는 굵은 글씨로 표기했습니다.)

무엇이 부자를 만들까? 부자인데 부자인지 모르는 부자들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가 책으로 나왔다. 게티이미지
무엇이 부자를 만들까? 부자인데 부자인지 모르는 부자들에 관한 인류학 보고서가 책으로 나왔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4월 29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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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은행 잔고가 아니다
진짜 부자란 누구일까요. 나인원한남에 살면 부자일까요? 순자산 100억이 넘으면 부자일까요?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여행 다니면 부자일까요?

브라질 인류학자 알코포라도는 2010년부터 부자의 삶을 관찰, 연구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요. 그의 결론은 이겁니다. “브라질에서 부유함은 ‘조건’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내부인(=부자들) 관점에서 보면, 누구도 진정한 부자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부자인 것입니다. 재산만으로는 상류사회 진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즉, 아무리 돈이 많아도, 다른 부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이 세계에선 소용없습니다. 그래봤자 외부자인 ‘졸부’에 불과하다고 모두들-남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여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경계 투쟁’이 벌어집니다. 전통 부자들은 암묵적으로 같은 계층만 공유하는 표식을 만들어 벽을 쌓고요. 신흥 부자들은 그 게임의 규칙을 받아들여서, 어떻게든 그 경계 안으로 침투하려고 애쓰죠.

2025년 8월 출간된 ‘부자들의 것’은 지난해에만 판매부수 10만권을 돌파하며 브라질 비문학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브라질 출판사 토다비아 제공
2025년 8월 출간된 ‘부자들의 것’은 지난해에만 판매부수 10만권을 돌파하며 브라질 비문학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브라질 출판사 토다비아 제공

이 점에서 소유물(=남에게 보여지는 모든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자들이 유명 작가의 미술품을 수집하고, 값비싼 와인을 마시고, 해외 여행을 다니고, 명품을 걸치는 건 단순한 ‘돈 자랑’이나 ‘세련된 취향’이 아닙니다. “부자의 소유물이 갖는 힘은 가격보다는 타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에서 비롯됩니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거대한 그림을 집에 걸어둔 사업가는 미술 애호가일까요? 작가의 부자 친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그림에 수백만 달러를 쓴다면 얼마나 돈이 많을지 상상해 보세요. 틀림없이 성공한 부자이니, 나도 그들과 함께 투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들은 예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루부탱 하이힐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는 바로 브랜드의 상징인 빨간색 밑창이죠. 하지만 구두를 일단 신고 밑창에 땅에 닿는 순간 그 힘이 바래버리고 만다는 게 큰 문제인데요. 그래서 한 파티장에선 구두 수선 디자이너가 소개한 ‘마법의 물약’이 여성들의 대환영을 받았습니다. 바로 빨간색 루부탱 밑창을 완벽하게 되살릴 중국산 빨간 매니큐어였죠.

전통의 부자일수록 중요한 건 외부가 아닌 내부인의 인정입니다. 저자는 부유한 가문 출신 올리비아를 만났을 때 ‘참 수수하게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부자가 올리비아에게 “그 셔츠 안느 거니?”라고 묻는 걸 보고 뒤늦게 깨달았죠. 그건 ‘세계 최고의 화이트 셔츠’로 알려진 프랑스 안느퐁텐 제품으로, 그 중에서도 올리비아가 입은 수놓은 맞춤형 셔츠는 최소 6000유로(약 1000만원)짜리라는 걸요.

문제는 이제 소셜미디어에 관련 정보가 넘쳐나면서 일부 명품은 상상력을 잃어가고 있단 점입니다. 한 여성 사업가는 길에서 마주친 강도가 자신에게 이렇게 외친 것에 좌절했어요. “롤랙스 시계를 내놔!” 과거엔 부자들만 알아챘던 롤랙스의 특징을 이젠 누구나 알게 되면서 롤랙스가 부자들에게 위험한 물건이 되어버린 거죠. 시계를 뺏긴 뒤 그는 이렇게 다짐합니다. “난 이제 까르띠에를 살 거야. 그 불쌍한 사람들은 까르띠에가 뭔지도 몰라.”

전통 부자의 개미 탐지기
부자는 ‘구별’을 통해 완성되기에, 부자들은 외부인에게 허투루 틈을 내주지 않습니다. 최대한 다른 집단과 멀리 떨어지려하죠. 90세가 넘은 부유한 할머니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알잖아? 발을 헛디디거나, 넘어지거나 하면 개미떼가 몰려드는 거야. 개미떼가 들끓는 집은 질투 때문에 무너져 내릴 인생이지. 없애버려야 해. 개미떼가 완전히 지배하기 전에 말이야.”

연구 초반 저자 알코포라도가 번번히 인터뷰에 실패한 이유도 부자들의 ‘개미 탐지기’가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부자들은 낯선 이가 접근하면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 판별하는데요. 그들이 중요하게 보는 기준 중 하나는 이겁니다. 얼마나 바쁜 사람인가?

저자 미셸 알포코라도(1986년생)는 부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강렬한 ‘자기 변혁’을 겪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옷차림, 소비욕구, 인간관계까지 바꿔놨다.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류학자이자, 소비자 트렌드 컨설팅 회사 ‘그루파 콘수모테카’의 창업자이다. 토다비아 제공
저자 미셸 알포코라도(1986년생)는 부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강렬한 ‘자기 변혁’을 겪어야 했다고 말한다. 이는 그의 옷차림, 소비욕구, 인간관계까지 바꿔놨다.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류학자이자, 소비자 트렌드 컨설팅 회사 ‘그루파 콘수모테카’의 창업자이다. 토다비아 제공

브라질 부자들은 바쁩니다. 사전 약속 없이 ‘지금 만날까?’라고 번개 쳤을 때 응하는 부자는 없습니다. 실제로 사업 때문에 일정 빡빡하든, 아니면 직함만 ‘예술가’인 사실상 백수이든 상관없이요. 그래서 바쁨을 과시하고 불필요한 만남을 차단하기 위해 부자들에게 꼭 필요한 게 비서이죠. ‘비서의 수’는 곧 부유함의 척도입니다.

작가는 초기에 한 기업 비서로부터 ‘사장님과의 오찬 일정 조율을 위해 비서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요. “비서가 없다”고 그가 솔직히 답하자 연락이 끊겨버렸습니다. 질문 하나로 판별이 끝난 거죠.

그래서 그는 비서를 만들었습니다. 진짜 비서는 아니고요. ‘레나타’라는 이름의 가짜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서, 비서인 척하며 연락을 주고 받았죠.

만약 부자들을 처음 만난 자리라면 취향에 대한 테스트를 각오해야 합니다. 미술, 시계, 여행지, 와인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은근히 지식 수준을 떠보는 거죠. 또 인맥도 중요합니다. 유명인을 이름 대신 별명으로 언급하면서, 그걸 이해하고 있는지 보는 거죠. 당연히 테스트 통과는 쉽지 않습니다.

신흥 부자들이 자신과 자녀의 영어 학습에 목을 매는 것도 그게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죠. “외국어 구사능력은 신흥부자가 되는 첫 번째 중요한 이정표이자 전환점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건 극소수만 가능한 일이고, 새롭게 부유해진 이들은 여기 속하길 열망하며 영어 실력 향상에 매진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명품은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려면 시간이 걸리죠.”

부자는 언제나 타인
초반에 고전했던 알코포라도는 ‘럭셔리 인류학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획득한 뒤에야 부자 사회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명품 브랜드 경영을 공부하면서 SNS로 이름을 알린 뒤, 브라질 언론들과 ‘리우데자네이루 시민의 명품 소비 행태’를 주제로 한 인터뷰가 히트를 친 덕분이었죠.

갑자기 부자들이 그를 초청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여전히 내부자는 아니었지만, ‘럭셔리 인류학자’로서의 그의 전문성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부자들은 이걸 전문가에게 확인받고 싶어했거든요. 이건(또는 이 사람은) 럭셔리한가요, 아닌가요? “나는 그들의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 지식이 확실성을 보증하는 요소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를 영입하고 싶어했죠. 럭셔리 인류학자인 나는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판단자였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진짜 부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그가 가장 질리도록 들은 말은 이거였어요. “나는 부자가 아니야.”

“이들은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진 않지만, 부유층으로 분류되는 걸 배제함으로써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정의합니다. 수년간의 연구 과정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은 자신들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칠 줄 몰랐죠. 그들은 ‘진정한 부자는 언제나 남들’이란 확신에 차 있었어요.”

부자들은 언제나 말한다. ‘저 사람이 부자야!’ 토다비아 제공
부자들은 언제나 말한다. ‘저 사람이 부자야!’ 토다비아 제공

상위 0.1%의 부자들조차 항상 더 위를 바라봅니다. 방탄 차, 파리의 저택, 사설 경호원을 둔 이웃을 보며 “나 말고 저 사람이 부자”라고 말하는 거죠. 그러면서 ‘난 그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상류 중산층’이라고 여기는데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특권을 누리는 게 부당하단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아무 노력 없이 부유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사회 불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도덕적 부담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납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들은 수많은 말처럼 이렇게 말하죠. ‘나는 별로 가진 게 없어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어디서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자신이 사회 불평등 문제의 일부라는 생각도 없죠. 빈부 격차 해소는 국가의 책임이라고 여기고요. 자선이나 기부활동에도 인색합니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harities Aid Foundation)이 발표한 ‘세계 기부 종합 지수’에서 브라질은 38점으로 하위권에 머물렀는데요. 참고로 한국은? 브라질과 동점(38점)입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자신들의 소박한 삶을 강조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트란코소의 한적한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저택은 그들에게 있어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최고급 이집트산 면으로 만든 침대 시트, 크리스털 잔, 디자이너 가구, 유명 화가의 그림, 대리석 욕실까지. 부자들에게 편안하다는 것은 그 물건을 살 돈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 책의 마지막 사례는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소박하고 편안한 삶을 유지하는 것뿐’이라며 이혼 과정에서 남편에게 연간 207만 헤알(약 6억원)의 생활비 지급을 요구한 상속녀 이야기인데요. 특히 이혼 뒤 자신의 가슴 보형물 교체 수술 비용까지 전 남편이 낼 것을 요구해, 양측이 법정에서 맞붙었죠. 이 사건과 관련해 저자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가슴 보형물은 ‘사치품(럭셔리)’일까요, 아닐까요?”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4월 29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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