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상업문화 예찬'…통속문화, 무조건 얕볼 것인가

  • 입력 2003년 10월 3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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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문화 예찬/타일러 코웬 지음 임재서 외 옮김/448쪽 1만2000원 나누리

먼저 이 책의 제목에 대해 딴죽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원제가 ‘In Praise of commercial culture’이니 직역으로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상업문화 예찬’이란 제목은 ‘상거래와 관련된 문화’로 주제를 국한시켰다는 오해를 불러오기 쉽다. 문화의 풍요성에서 시장의 역할을 강조한 책인 만큼 ‘상업적 문화의 예찬’ 또는 ‘문화 상업주의 예찬’ 정도가 제목으로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저자는 ‘문화비관주의’ ‘문화낙관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문화비관주의란 자기 세대의 문화가 가치를 잃고 타락하고 있다는 믿음이다. 문화낙관주의는 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관념이다.

현대사회의 문화비관주의는 주로 대중문화의 상업성을 공격한다. 돈벌이를 좇아 피상적인 대중의 취향을 따른 나머지, TV는 불륜을 다룬 드라마나 가요 프로그램 등으로 채워져 가고, 미술 문학 등의 전통적 장르에서도 혁신적이거나 의미 있는 작품은 날로 푸대접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문화낙관주의자인 저자는 상업적 풍요의 혜택을 받는 현대의 문화계를 ‘축복’으로 여긴다. 대중은 당연히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는(유행하는) 양식’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상업적 문화는 문화의 다양성을 오히려 장려하며, 상업적 문화가 번성함에 따라 지난 시대의 문화나 특이한 취향을 고집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늘어났다고 이 책은 소개한다.

실제 팝 음악이 날로 번성하는 가운데 르네상스 음악이나 미니멀리즘 음악 등의 신음악 조류에 대한 팬도 늘어났다는 사실은 저자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부모 세대들은 ‘우리 어릴 때는 음악감상실에서 시간을 보냈고 괴테와 루소를 읽었다’고 강조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뿐 아니라 구미에서도 손에 얻을 수 있는 고전음악 음반과 문학서적의 범위가 훨씬 늘어났다는 사실은 반추해볼 만하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상업문화가 문화 다양성을 키우고 전통적인 고급문화까지 육성한 ‘사례’들을 나열한 데 그친 반면 이런 현상이 진행되는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 때문에 자본의 선의에 대한 저자의 믿음은 때로 ‘믿음’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의 ‘패트런십’과 ‘자유시장’이 작동하는 원리를 각각 정밀하게 비교하지 않은 점도 약점으로 꼽을 만하다.

문화의 상업화가 가져올 수 있는 해악에 대해 저자가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문화 소비자인 대중을 ‘수요 예측이 가능한 일정한 소비 패턴을 가진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정형화 패턴화한다는 경향을 저자는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패턴화’ 경향은 더 깊이있는 논구가 필요한 부분으로서, 이를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가질 수 있는 갈등의 이유’ 정도로 논지의 주변부에 배치한 것은 핵심을 비켜갔다는 느낌을 준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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