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백성사 한다며 소환불응 해서야

  • 입력 2003년 7월 16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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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두 차례나 검찰 소환에 불응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 고백성사 제안을 무색케 한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다 털고 가자고 하는데, 집권당 대표는 드러난 혐의에 대한 조사조차 받지 않으려고 하니 고백성사의 진의마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시민단체들까지 공동으로 정 대표의 검찰 출두를 공개 촉구하고 나섰는데도 정 대표가 계속 버틴다면 노 대통령의 제안은 신뢰성과 함께 정당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청와대가 개인적 비리는 면책대상이 될 수 없다거나 굿모닝게이트 수사에 정치적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선을 긋고 있는 것도 이를 의식한 때문이라고 본다. 정 대표의 소환불응은 무엇보다 “떳떳하다”는 자신의 주장과 배치된다. 떳떳한 사람이라면 소환조사든 진실규명이든 조금도 꺼릴 게 없지 않는가.

여권의 이 같은 자기모순 때문에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야당이 ‘물귀신 작전’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곤경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을 지경이라면 고백성사 제안의 순수성은 이미 훼손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국회와 당의 바쁜 일을 처리한 뒤 검찰에 나가겠다”는 정 대표의 출두연기사유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게 됐다.

공개적으로 검찰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최근 민주당의 움직임을 종합해 보면 검찰 길들이기를 통해 사건을 유야무야하거나 국회의원의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정 대표에 대한 사법처리를 면해 보려는 속내가 엿보이기도 한다. 그래서는 서울지검 특수2부 채동욱 부장검사의 말대로 ‘검찰도 국가도 다 죽는’ 사태가 우려된다.

집권당과 대표마저 법집행을 우습게 안다면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그런 법을 누구에게 지키라고 요구할 것인가.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국정난맥 또한 바로 법치의 위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과 정 대표는 제헌절 55주년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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