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과 노무현씨도 불우한 과거를 딛고 자기 분야의 스타가 됐다는 점에서 현대판 영웅신화감이다. 수제비를 물리도록 먹으며 어렵게 자란 최진실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CF덕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빈농의 아들로 가난에 대한 열등감을 안고 성장한 노씨는 5공 청문회를 통해 정치인으로선 보기 드물게 스타가 됐다. 그런데 어쩐 일이랴. 상대방의 파국 선언에 대한 반응마저 너무나 흡사하다니. “이혼을 원치 않는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는 최진실이나, “공조는 대국민 약속이다. 국민에 대한 약속이 일부 오해 때문에 파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노씨나….
▷조성민-최진실, 정몽준-노무현 커플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판이한 사람끼리 만나 각각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기만을 바랐다는 점이다. 각기 다른 분야의 톱스타로서 조성민은 아내의 헌신적 내조를, 최진실은 남편의 헌신적 외조를 원했으니 아귀가 맞기 쉽지 않았을 터. 정-노 커플도 서로 자신이 단일후보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일화 뒤 정씨는 ‘5년 후’를 보장받았다고 자신했으나 노씨는 특유의 말실수인지, 계산된 본심인지 정씨를 ‘차차기 중 한 명’으로 여긴다는 걸 드러내버렸다. 순간의 사랑,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먼 탓이었을까.
▷부부간의 속사정을 누구도 모르는 것처럼 정-노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문제가 있는 관계였다면 빨리 깨어지는 것이 여러사람 위해 좋을수도 있다. 다만 이 같은 ‘정치적 엔터테인먼트’와 ‘엔터테인먼트적 정치’가 같은 날 터져 나온 것은 지극히 상징적이다. 고 이주일씨가 생전에 정치판을 떠나면서 “코미디 잘 배우고 갑니다”고 했듯이, 이제는 정치인이 한수 배우러 코미디판으로 가는 일만 남은 것일까. 그나저나 사랑도, 신의도 믿을 수 없게 된 세상. 이제 무얼 믿고 살아야 하나.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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