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명품 키워주는 ‘짝퉁’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9시 31분


요즘 유명 브랜드를 그대로 베낀 가짜 상품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가짜 상품을 ‘짝퉁’이라고 하더군요. 일부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며 ‘짝퉁’의 범람을 우려합니다. 그런데 최근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構築)한다”는 색다른 주장을 들었습니다.

독일 패션 명품 브랜드 ‘휴고 보스’의 시계 부문 최고경영자(CEO)인 장 마크 자크 사장(53)은 3일 방한하기 전에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는 “이 나라에는 오메가, 카르티에, 구치 등 온갖 가짜(fake) 명품이 넘쳐나는데 ‘fake girl’(게이를 지칭하는 말)도 있더라”며 ‘짝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브랜드의 힘을 빌려 살아가는 명품업체 CEO의 ‘짝퉁론’을 물어봤습니다. 자크 사장은 “한 브랜드를 모방한 ‘짝퉁’이 나오는 것은 그 브랜드가 명품 대열에 올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며 “짝퉁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짝퉁’이 범람하면 손해가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습니다.

“일반인들은 명품 브랜드를 사는 일을 꿈처럼 여깁니다. 언젠가 돈을 벌어 명품을 사겠다는 꿈을 갖죠. 정교한 ‘짝퉁’이 나오는 것은 명품이라는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더욱 강해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지 않겠습니까.”

‘짝퉁’은 명품을 쉽게 사지 못하는 일반인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명품 이미지를 단단히 ‘구축(構築)’시킨다는 주장입니다. ‘짝퉁’이 명품의 대체재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명품 브랜드는 가짜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품만 골라 사는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세계 시장에서 ‘짝퉁’을 겁내지 않는 국산 브랜드의 힘을 기대해봅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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