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잘못되면 대통령 하야 빨리 美로 떠나라”

  • 입력 2002년 5월 7일 18시 23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를 배경으로 각종 비리를 저질러온 혐의를 받고 있는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善)씨가 검찰 출두에 앞서 직접 녹음한 테이프가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씨는 검찰 출두(4월16일)를 앞두고 4월12일 밤 최성규(崔成奎·해외도피 중)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등과 대책회의를 가진 뒤 14일 선산이 있는 전남 영암으로 가는 승용차에서 80분간에 걸쳐 녹음했다고 밝혔다. 이 테이프에는 청와대 비서관 등이 자신의 해외 밀항을 결정했다는 내용과 홍걸씨에게 구명을 부탁하며 남긴 전화 메시지 내용 및 김 대통령과의 대화내용 등이 담겨 있다. 최씨는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태로움을 느껴 녹음했다고 테이프에서 주장했다.

뉴스위크 한국판을 통해 입수한 녹취록을 정리해 보도한다. 》

☞ 최규선 녹취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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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밀항 종용▼

“이만영-최성규-국정원 2명 수차례 회의갖고 밀항결정”

오늘 4월14일, 일요일 아침에도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현섭씨와 통화했다. 그도 걱정을 많이 했다.

“최규선씨 소환을 오늘쯤 해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검찰 관계자가 묻던데, 검찰도 별달리 나온 게 없어 곤혹스러운 것 같습디다. 그런데 제일 문제가 LA의 그 사람(김홍걸)에 관한 부분을 최규선씨가 어떻게 진술하느냐를 두고 검찰뿐만 아니라 청와대, 그리고 모두가 떨고 있습니다.”

김씨의 말에 나는, “100만원짜리 수표 300장을 (홍걸씨에게) 건넸는데, 그건 수표였기 때문에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소환을 늦춰 주십시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고 부탁했다.

김씨는 “아무튼 박사님, 나라를 살려주십시오. 나라를 살리셔야 됩니다. 박사님이 세우신 우리 국민의 정부 아닙니까”하면서 나를 달랬습니다.

또 그제(4월12일)부터 이만영 정무기획비서관과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 또 2명의 국정원 직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여러 차례 가졌다고, 최성규씨가 나에게 말해왔습니다.

(최씨는) “출국금지가 되기 전에 최규선이가 떠나버렸어야 했는데, 출국금지가 돼서 가지도 못하고, 또 검찰에 출두하면 최규선의 말 한마디에 우리 정권이 잘못되고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얘기하자 거기서 한 인사가 부산에서 밀항시켜 가지고 밖으로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말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나는 밀항은 않습니다. 밀항하게 되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밀항하면 미국은 갈 수 있는 겁니까”하고 묻자, (최씨는) “미국은 갈 수 있다. 일단 가버리자. 니가 정 혼자 나가기 그러면 내가 널 데리고 나가주마”라고 말했습니다. 최씨의 부인까지 나서서 “꼭 내 남편이랑 같이 떠나달라. 2, 3년이면 된다. 꼭 같이 떠나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내가 (광주에 가기 위해) 김포로 가는 도중에 최성규씨가 전화해 “다 준비가 돼 있다. 규선아, 떠나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 내가 죄가 없고 혐의가 없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라고 하자 그는 “아니다. 니가 들어가면 나라가 뒤집어진다. 지금은 안 된다. 검찰도 지금 시간을 벌고 있는 거다. 지금 청와대도 난리고 나 역시 괴로워서 못살겠다. 나는 짐을 싸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끈질기게 밀항을 권유했는데 광주로 가는 비행기에서 저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 이 사건 무마의 첩경으로 알았던 겁니다. 그게 솔루션(해결책)으로 알았던 겁니다. 그러면 밀항하면 내가 없어지느냐, 그게 아닙니다. 아, ‘그렇다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성규씨에겐 김홍일 의원이 후견인입니다. (김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이만영 비서관과는 아주 막역한 사이입니다. 이 비서관은 권력 핵심의 돌아가는 내용도 다른 수석 비서관들보다 잘 파악할 수 있고, 상대하는 사람들 또한 일반 비서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최성규씨는 수차례 회합을 가졌다고 저한테 말해줬고, 마침내 내린 결론이 ‘밀항’이라는 것입니다.

▼김홍걸에 남긴 메세지▼

“아버지한테 꼭 말씀하시오. 날 파렴치범몰면 다 붑니다”

최규선씨는 4월14일 녹음을 한 뒤 미국에 있는 김홍걸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잘 들으세요. 이제 검찰의 소환이 임박해 가는데요, 내가 이제까지 5년을 기다리면서 김박(김홍걸씨)도 알다시피 정치적 재기 그 하나만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고 감내하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내가 홍걸씨를 끌어안고 어떡해서든지 다 보호해줄 테니까요. 그 대신 아버지한테 말씀하십시오. 나를 파렴치범으로 몰려고 한다거나, 재기를 막는 어떤 방법이 시도된다면 나는 다 불어버립니다. 나는 죽을 각오가 돼 있어요. 이 말 명심하십시오.

김박, 꼭 말씀하셔야 합니다. 나는 아들도 있고, 내 한 몸 죽어도 내 아들이 증언할 수 있도록 모든 녹음을 남겨서 안전한 사람에게 맡겨놨어요. 나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분명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마세요. 나 지금 이성을 잃었습니다. 어떤 회유도 난 안 받아들입니다. 난 내 길을 갑니다. 그 대신 나는 김박이 안쓰럽고, 나도 불쌍한 놈이었고 김박도 거기서 소외되었던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고 위안이 되면서 왔는데, 홍일이형이 또 서울에 들어옵니다. 어떤 장난을 칠지 몰라요. 만약에 이런 장난이 이루어지면 공개됩니다. 모든 게 공개될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이건 아버님밖에 없습니다. 최규선이에 대해서 나중에 검찰에서 어떤 말이 나오고 변호사가 올 때에도 홍걸씨는 내가 보호해 준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나를 파렴치범으로 몰지 말라고 해주세요. 나의 재기를 막는 어떤 시도라도 있을 때는 바로 끝나버립니다. 아시겠죠. 김박 명심하십시오. 빨리 지시해 주세요.”

▼유종근 경제고문 임명▼

“DJ에 고문 임명 조언하자, 자네가 큰일하고 있네 칭찬”

최규선씨가 98년 1월2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나눴다는 대화 부분으로 유종근 전북지사의 대통령 경제고문 임명이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네가 다 일을 보고 있는데 유(종근) 박사는 자기가 앞장서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고 인터뷰하고 난리법석이에요. 자기가 공은 다 세우려는 것 같아.”

“원래 유 지사님이 미국에서 좀 오래 있어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 어쩐지 아는가. 나한테 재무장관을 달래요. 내가 막 뭐라고 했네. 그러자 ‘제가 뭐 어떻습니까. 제가 능력이 안 됩니까, 나이가 안 됩니까, 경력이 안 됩니까’ 그래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 자리는 자민련하고 얘기가 됐고 김종필 총재와 얘기가 끝난 자리네. 그런데 자네가 이렇게 우기면 되겠나’ 하고 끝내고 말았네.”

“대통령님. 그러나 유종근은 쓰셔야 합니다. 유종근을 옆에 두실 때 대통령님이 시장경제의 주창자고 추종자라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미국 대학 교수고 미국통이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의 추종자 아닙니까. 외환위기를 극복할 때까지만이라도 김태동이니 누구니 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유종근을 일단 쓰셔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수석도 안 하겠다고 하고 뭔 자리 하나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내주었습니다.

“어드바이저가 어떨까요. 자문관, 어드바이저가 한국말로 무얼까요.”

“그래 고문, 고문이네. 대통령 경제고문, 어떤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자리를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김××(수행보좌역)를 불렀습니다.

“이봐, 저 유 박사 연결시켜 봐.”

“유 박사, 나요. 지난번 말은 새겨듣지 마소. 그런데 우리 최규선 보좌역이 큰일을 하고 있네.”

▼대우-현대 외자유치▼

“DJ, 도움 준 김우중씨 지원 지시”

저는 이 정권 탄생에 기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97년 12월 20일 당선 직후에 저를 불러서 “창고가 비었네. 자네하고 나하고 나라를 살리세. 자넨 그런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네. 내가 사람 볼 줄 아는데 자넨 정치적으로 대성할 것이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저는 그야말로 옛날에 유명했던 만화 주인공인 뽀빠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고, 그 후 IMF 극복 과정에서 김 대통령의 극복 열정을 읽었으며 그가 제게 이러한 말할 수 없는 찬사를, 격려를, 힘을 불어넣어 준 것에 대해 저는 DJ를 존경을 넘어 신처럼 숭배하게 됐습니다. 특히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이 당선 하루 만에 저를 불러서 그런 말을 해준 것에 대해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를 그해(1997년) 12월 23일 서울로 데려오게 됩니다.

저는 그 사실을 당선자에게 보고하러 갔습니다. 그 때 유럽 출장 중이던 김우중 (대우)회장으로부터 알 왈리드 왕자가 오면 꼭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것까지 보고했더니 당선자는 저를 삼청동 안가의 안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는 이미 청와대였습니다.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힘을 발휘했네. 그리고 김우중씨 같은 사람 없네.”

“그러잖아도 저한테 직접 전화까지 했습니다.”

“그래,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야. 그 사람을 돕게. 그리고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 나 도움을 많이 받았네. 그리고 이 회사 저 회사 만나게 하지 마. 그냥 대우만 만나서 투자유치를 시키게.”

“알겠습니다.”

저는 당선자의 그 말을 듣고 “아, 대우를 밀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당시 환율이 1800원일 때 알 왈리드 왕자가 1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대우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쾌거를 올린 것입니다. 1달러가 아쉽고 국가 부도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런 큰 액수는 국가로 봐서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대우로 봐서도 엄청난 쾌거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많은 건실하고 잘 나가는 회사를 놔두고 왜 하필 대우일까? 사람들은 의아해하고 궁금했을 겁니다. 이러한 뒷이야기를 저는 역사에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후 현대도 대통령 당선자가 찍어줬습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에 5000만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가 이런 노력을 할 당시에 정동영씨도, 한화갑씨도 저를 불러서 저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화갑씨는 당시 대림의 전무를, 정동영씨는 컨설턴트를 만나보라고 해 그렇게 했습니다.

액수가 이렇게 클진대 합법적인 피(대가)만 해도 당시 한화로 계산하면 300억∼400억원에 이르는, 그야말로 평생을 두고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도 대통령이 저에게 해준 격려의 말씀, 또 공직을 통해 크고 싶어서 돈에 얽매여서는 안 되겠다 싶어 김우중씨가 건넸던 7억원도 거절했고, 현대로부터도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알 왈리드 왕자를 비롯한 투자자로부터도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김대통령과의 관계▼

“목소리 듣고싶네…빨리오게 대통령 통화 되자마자 재촉”

조지 소로스는 (DJ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만난 인사였습니다. (내가)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소로스의 휴가처로 달려가서 그를 모셔왔습니다. 그가 1월3일 방한하기 전에 하루 먼저 귀국해서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DJ를 만났습니다.

나중에 대통령부속실장을 했던 김××씨가 불이 나게 전화를 해도 나와 연락이 잘 안 되자 대통령이 직접 나를 찾았습니다. 대통령은 통화가 되자마자 대뜸 화를 내시면서 “이 사람아, 자네 찾느라고 우리가 난리가 났어. 내가 휴가 중인데도 자네 목소리 들어보려고 이렇게 휴가를 보내고 있네. 빨리 오게.” 그래서 워커힐 VIP맨션으로 갔습니다.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자 응접실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이 모여 앉아서는 “축하합니다. 당신은 2인자입니다. 대통령께서 휴가 보내시는데 서로 오겠다고 난리인데 다 미루고 최규선이 어디 있느냐고 찾고 있습니다. 정권의 2인자 최규선 잘 부탁합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나는 대통령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오소, 오소, 오소.” 대통령은 저를 왼쪽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네가 나라를 살리네. 소로스 들어오지?”

“네, 당선자님. 내일 들어옵니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됐어. 사람들은 소로스를 보고 투기꾼이니 어쩌니 그래요. 모르는 소리. 소로스가 어때서. 세계적인 투자가이고 철학자예요. 자네 ‘오픈 소사이어티’ 알지?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지 전쟁과 테러가 없어진다는 간단한 철학을 가지고 소로스가 매년 몇 조원씩 복지에 쓰고 있는 단체야. 그는 세계적인 철학자네.”

그렇게 소로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시장이 세계에 알려져야 하네. 소로스도 한국에 투자한다는 게 알려져야지 세계적인 투자가들이 한국에 몰리네. 자네가 12월에 대우에 MOU(투자양해각서)를 맺게 해준 알 왈리드 왕자도 억만장자 맞지? 내가 편지 보고 알았어. 자네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아는가. 자네는 나보다 더 훌륭하네”라며 격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이제 자네는 서열이 달라졌네. 그리고 권력 내 위치가 달라져부러. 이럴 때일수록 자네는 내 밑에서 커야 하네.”

“아이고.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대통령님.”

“국제통화기금(IMF)만 극복하면 역사에 남네. 그리고 남북관계 풀어가지고 그렇게 우리 국민이 숙원하는 노벨평화상도 받을 거야. 그때도 자네가 역할을 해줘. 자네 처음에 쓸 때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만류했는가 몰라. 검증이 확실히 됐습니까, 좀 이상한 놈이라고 합니다. 사기꾼 아닐까요. 그러나 다 뿌리치고 내가 사람 볼 줄 알아 쓴다고 했더니, 자네가 나 대통령 당선될 때 위기마다 다 벗어나게 해주고 이제 IMF 극복하는 대통령까지 만들어주고 있는 거네.”

“아닙니다. 대통령 당선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리〓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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