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맛있는 수다]누룽지의 변신-누룽지탕

  • 입력 2001년 4월 30일 15시 45분


워낙 남편 건사를 잘 못하는 아낙네로 찍히다 보니 저희 시어머니는 저희 집에 오실 때 이것저것 참 많이도 싸다 주십니다. 김치는 물론, 장조림과 무 말랭이, 콩자반 같은 밑반찬부터 곰국이나 미역국 같은 국물류, 하다못해 다진 마늘까지 갖다 주십니다. 낼름낼름 받아먹는 저야 좋지만 저희 시어머니, 참 답답하시겠죠? 이래서 아들 둔 아줌마들 "살림 잘하는 여자가 최고!"라고 하시나봐요.

어쨌든 이것 저것 얻어먹다 보니 요즘은 누룽지도 갖다 주신답니다. 저희 집은 전기밥솥을 쓰기 때문에 평생 누룽지 생길 일이 없는데 시댁은 압력밥솥을 쓰시거든요. 밥을 할 때마다 생기는 누룽지 말고도 저희 시어머니는 밥이 좀 남으면 그걸 압력밥솥에 얇게 펴서 누룽지를 만드십니다. 노릇노릇하게 만들어진 누룽지는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지 몰라요.

저희 시어머니는 이 누룽지를 '비상식량'이라고 부르십니다. 주부들의 비상시, 그러니까 남편이 갑자기 일찍 들어왔는데 밥이 없다거나, 출출한데 라면 한 봉지 보이질 않는다거나 할 때 이 누룽지를 끓여먹으면 구수한게 맛도 있고 소화도 잘되고 라면 먹는 것보단 몸에도 좋으니까요. 든든한 '비상식량'이란 말이 맞죠?

누룽지 하면 떠오르는 요리는 옛날에 엄마가 만들어주신 누룽지 튀김입니다. 누룽지를 기름에 튀긴 후 설탕을 솔솔 뿌린 누룽지 튀김. 라면땅과 함께 홈메이드 간식의 1,2위를 다투던 인기메뉴였죠. 뜨거워서 후후 불면서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요즘 애들도 그런 걸 먹을까요? 워낙 입맛이 고급들이라...

'비상식량' 누룽지가 가장 화려하게 변신하는 요리는 아마 '누룽지탕'일 꺼예요. 친구들이랑 중식당에 가서 처음 누룽지탕을 먹었던 날, 그 부드럽고 오묘한 맛에 얼마나 감동했던지. 처음엔 누룽지탕을 먹자는 친구의 말에 "웬 누룽지? 딴 거 시켜!"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저였지만 (전 누룽지탕이 숭늉 비슷한 건 줄 알았거든요) 한입 먹어본 순간 누룽지탕의 팬이 되었답니다. 기름기가 질펀한 보통의 중국요리와는 달리 해물이 들어간 소스 속에서 흐물흐물해진 누룽지는 너무 부드럽고 개운하더라구요.

요리는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더니, 누룽지탕은 귀로도 먹는 요리랍니다. 튀긴 누룽지에 뜨거운 소스를 부을 때 "부르르∼지르르∼"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정말 먹음직스럽거든요. 눈을 즐겁게 해주는 예쁜 요리들은 많지만 귀까지 즐겁게 해주는 요리는 흔하진 않잖아요?

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중식당에 가서 누룽지탕을 먹었습니다. 제가 공돈이 생겨서 한방 쏜 거죠. 누룽지와 담백한 해물이 어우러져 "부르르∼지르르∼"하니까 부모님들도 아주 맛있게 드시더라구요. 아마 큰 딸이 사주는 거라 더 맛있게 드시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러고 보니 저희 시어머니께 죄송하네요. 매번 누룽지를 만들어다 주시는 분은 시어머닌데 기분은 친정에 가서 내니...이럴 때마다 전 꼭 딸을 낳고 싶어진답니다.

***누룽지탕 만들기***

재 료 : 찹쌀 누룽지 6개 (15cm크기), 해삼 1마리, 새우 100g, 갑오징어 50g, 표고버섯 3장,죽순 1개, 마늘 4쪽, 대파 1/2대, 간장 1큰술, 청주 1큰술, 소금 2작은술, 육수 6컵, 물녹말 2큰술, 참기름 조금

만들기 : 1. 삼삼한 소금물에 살짝 씻어 건지고 불린 해삼은 내장을 제거한 다음 길게 반 갈라 3,4cm길이로 넙적하게 썬다

2.갑오징어는 몸통을 길게 갈라 촘촘하게 칼집을 낸 다음 2cm너비로 썬다

3.죽순은 물에 씻어 모양을 살려 빗살무늬가 나타나게 썬다

4.표고버섯은 부드럽게 불려서 밑동을 잘라내고 물기를 짠다음 넙적하게 썬다

5.마늘은 얇게 대파는 길쭉하게 선다

6.팬에 기름을 한두컵 붓고 손질한 해물과 야채를데쳐낸다

7.팬에 마늘, 파를 볶아 향을 낸 뒤 해물과 야채를 모두 넣고 볶으면서 간장과 청주를 넣는다

8.끓는 육수를 부어 끓이면서 소금간을 하고 물녹말을 넣어 끓으면 참기름을 넣어 고루 섞는다

9.누룽지를 튀겨 그릇에 담는다

10.튀긴 누룽지 위에 뜨거운 소스를 끼얹어 낸다

ps. 만드는 법이 너무 어렵지요? 이런 요리법을 볼 때마다 갈등하게 됩니다. 그래도 만들어 볼 것이냐, 포기하고 사먹을 것이냐...이런 갈등을 이겨내고 직접 만들어봐야 요리의 달인이 될텐데, 전 아직 "복잡한 요리는 사먹는 것이 남는 것!"이란 얄팍한 본전론을 버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얼마나 지나야 "집에서 먹는 게 남는 것!"이란 지론을 갖게 될까요?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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