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한자 까막눈

  • 입력 2001년 4월 16일 18시 36분


21세기에 인터넷 세계를 주도할 언어가 영어와 중국어라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이웃 중국은 12억 인구에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지녀 장차 미국의 경제력을 앞지를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일본은 현재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다. 일선 고교의 제2외국어는 교사의 공급이 학생의 수요(과목 선택권)를 오래도록 제약한 분야이다. 고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독일어 프랑스어를 배우지만 실생활에서는 중국어와 일본어만큼 유용하지 못하다.

▷서구의 학생들이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울 때 최초로 부닥치는 벽은 복잡한 그림 같은 한자를 암기하는 작업이다. 일본어는 약 2000자, 중국어는 약 4000자의 한자를 외워야 한다. 한자교육을 제대로 받은 한국 학생들은 중국어와 일본어 입문이 훨씬 용이하다. 한자를 잘 알면 중국 일본 여행 중 길거리 간판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동양문화권에서 한자는 유일한 공통 문자이다. 우리말의 3분의 2 가량이 한자에서 유래돼 한자를 알면 우리말의 정확한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한글전용이 문자생활의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한자 사용 빈도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요즘의 한글세대들은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 한자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음으로 파악하지만 ‘의사(醫師)’를 한글로 써놓더라도 안중근 ‘의사(義士)’와 혼동하는 일은 좀체 없다. 그래서인지 紳士(신사) 民族(민족) 國家(국가)를 한자로만 써놓으면 못 읽는 서울대생이 많다고 한다. 고시 준비생들은 한자어가 많은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한자부터 먼저 배워야 하는 실정이다.

▷일본어는 한자 없이 히라가나로만 표기하면 글자수가 많아지고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어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표기하더라도 무리가 없으니 컴퓨터 시대에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러나 초중고교생들에게 한자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공통 문자인 한자를 배우지 않고서는 이웃 두 큰 나라의 언어와 문화는 물론 우리 역사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가장 앞서간다는 대학의 학생들이 기초한자도 모른다니 교육과 평가 시스템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것이 분명하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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