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의 위험한 발상

  • 입력 2001년 4월 10일 18시 56분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고시(告示) 제정 작업과 관련해 비판적인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동아일보 기자의 취재를 봉쇄한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공정위는 7일부터 신문고시 제정을 주도하는 위원회 내 주요 사무실 출입문에 ‘동아일보 출입기자 출입금지’라고 써 붙이고 기자의 접근을 제지하다 문제가 커지자 9일 오후 이를 떼어냈다. 동아일보는 2월17일 ‘신문고시 부활 검토’라는 제목의 기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신문고시 제정의 문제점과 이를 강행하려는 공정위의 움직임을 보도해 왔다.

정부기관에 대한 취재 봉쇄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지금까지 역대 어느 정부, 특히 군사정권 하에서도 자신의 부처를 비판했다고 해서 기자를 출입 정지시킨 경우는 없었다. 이는 정보접근권을 차단해 언론을 압박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다.

더욱이 실무자 차원의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공정위 부위원장 주재로 간부회의까지 열어 결정한 일이라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어느 정부 부처가 회의까지 해가며 특정신문사에 대해 조직적으로 취재 방해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언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처럼 감정적 보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국민의 정부’의 언론관인지 묻고 싶다.

만일 보도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논리적으로 설명해 정정을 요구하고 그것이 어려울 경우 언론중재 등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순리다.

공정위 위원장은 취재 봉쇄 사실을 몰랐다고 하나 믿어지지 않는다. 공식회의까지 열어 시행된 일을 위원장이 몰랐다면 그 조직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만일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위원장 자격이 없다.

우리는 공정위의 이 같은 무리수가 신문고시 제정 작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정위는 신문고시 제정에 반대하는 규제개혁위원회 일부 민간위원들의 의견도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공정위 부위원장은 반대 여론이 엄존해 있는데도 어제 또 신문고시 제정 강행 방침을 밝혔다. 규제개혁위에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행 방침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저의가 궁금하다.

공정위의 주요 기능은 기업 일반의 불공정행위를 시정하는 것이다. 그런 기관이 이처럼 불공정한 일을 한대서야 누가 승복하겠는가.

합리적인 절차와 토론이 존중되고 언로가 트인 분위기에서 신문고시 제정 문제가 논의되기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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