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윤리가 경쟁력이다-2]3M

  • 입력 2001년 4월 2일 18시 49분


북아프리카 사막 모랫길 위로 한 미국인이 차를 몰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주목하고 있던 경관 2명이 손짓해 차를 세웠다. 젊은 경관이 다가와 “과속을 했다”며 운전자에게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했다.

미국인은 “과속하지 않았다. 절대 못 준다. 판사에게 가자”며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젊은 경관은 집요하게 돈을 요구하다 완강하게 버티자 돌아서 나이 든 경관에게 속삭였다. “어떡하죠. 보통 고집이 아닌데. ‘쓰리…’ 뭔가 하는 회사의 지사장이랍니다.”

나이 든 경관이 ‘재수 옴 붙었다’는 표정으로 내뱉었다. “3M이라고? 그냥 보내버려. 걔들한테는 안 통해.”

▼글 싣는 순서▼
1. 존슨&존슨
2. 3M
3. 美 기업평가 시스템
4. 다국적 기업 나이키
5. 사우스웨스트
6. 조지아 퍼시픽 펄프공장
7. 네슬레
8. 노키아
9.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10. 전문가 좌담-독자 반응

미국 중북부 미니애폴리스 3M의 메인빌딩에서 만난 국제사업기획 담당 리 케네디 이사가 들려준 얘기다. 세계 200여개국에 진출, 64개 자회사를 두고 어디서건 까다로운 미국 내 윤리기준을 엄정히 적용하기로 유명한 기업이다. 케네디 이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절대 타협은 없습니다. 현지상황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차라리 사업을 포기하죠.”

▽법보다 강한 윤리가 뉴비즈니스를 낳는다〓3M의 윤리기준은 미국에서도 가장 정교한 매뉴얼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3M의 기업윤리 규정집은 ‘선물증여’ 항목에서 “사업과 관련해 상대방에게 연간 50달러(약 6만5000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은 제공할 수 없다. 여기에 커피와 도넛은 제외된다”는 식으로 기업활동 전 분야에 대한 기업윤리 실천방법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것은 모조리 매뉴얼로 만든다’는 3M다운 접근방법이다.

변호사 35명이 모인 ‘제너럴 카운슬 오피스’란 법률팀에서 기업윤리 매뉴얼을 만들고 감독 및 교육을 맡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법률에 어긋나는 대외적 문제에 대응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기업윤리를 통해 법에 저촉될 가능성을 미리 막는다는 것. 미국기업이 왜 기업윤리를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부서의 책임자인 브래드 스위트는 솔직하게 말한다. “기업윤리도 결국 ‘비즈니스’를 위해 하는 겁니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법률적으로 대처하는 것보다 기업윤리를 통한 예방이 비용을 크게 줄입니다. 소송이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미국에서 6만가지의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3M의 법률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3M은 법률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원한다’는 원칙은 때로 전혀 새로운 분야의 기업경쟁력을 낳는다. 환경문제가 불거지고 각종 입법화가 추진되기에 앞서 3M은 1975년 ‘법 이상의 무엇’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3P(Pollution Prevent Pays)프로그램’이 바로 그 결정판.

미국유학 중 3M에 입사해 25년째 근무하고 있는 전략사업개발담당 이사 이인희 박사의 설명. “그래서 환경친화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업부문을 키워냈죠. 96년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대체냉매 ‘플루오르화 수소 에테르’를 다른 기업보다 앞서 개발하는 등 3M안에서도 가장 전도 유망한 미래형 사업분야가 됐습니다.”

▽창의력 대 윤리〓접착력이 약해 ‘실패’한 접착제에서 3M의 젊은 연구원이 탈부착형 메모지 ‘포스트 4’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 ‘총매출의 30%는 지난 4년간 개발된 제품에서, 총매출의 10%는 지난 1년간 새로 내놓은 상품에서 나오도록 한다’는 규정은 혁신을 꿈꾸는 세계 기업들이 벤치마킹하는 경영방침이다.

남다른 창의력 및 제품개발력의 밑뿌리에 있는 원칙이 바로 ‘15%룰’. 연구개발 담당 직원들이 근무시간의 15%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할애해 ‘딴 짓’을 해도 좋다는 규정이다. 이와 맞물려 ‘노력 끝에 나온 실패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관용적 태도도 관리자들 사이의 불문율이 돼 있다. 직원 개개인의 성과를 엄밀하게 평가하는 미국적 인사고과시스템을 고려해볼 때 상당히 개성있는 부분이다.

문득 떠오르는 의문 하나. 이렇게 윤리적으로 ‘까다로운’ 기업이 어떻게 창의와 혁신의 대명사가 됐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반짝이는 창의와 따분한 듯한 윤리는 병존할 수 있는 걸까.

스티븐 웹스터 연구개발담당 이사는 이렇게 답한다. “15%룰은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함부로 ‘남용’해도 좋다는 걸 뜻하진 않습니다. 모두가 충실히 일하는 것을 기본으로 ‘창의성’이 싹틀 수 있는 관용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부하직원들을 믿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윤리규정’입니다.”

<미니애폴리스〓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