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의 벽을 넘어]불교-기독교 '접점' 반평생 연구

입력 2001-03-11 18:46수정 2009-09-2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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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거론했어요. 인류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 두 종교에 있습니다. 각각 동 서양을 대표하는 이질적인 두 종교가 정녕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 학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저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 교수(58)는 이미 그런 접촉점을 13세기 일본의 정토사상가 신란(親鸞)에게서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뿌리뽑기 어려운 인간의 죄악성에 한없이 고민하다가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서원에서 구원의 빛을 발견해 타력(他力) 신앙의 극치로 달려간 그의 사상에서 길 교수는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자 루터가 들려주는 은총의 메시지를 들었던 것이다.

“자력(自力)으로는 불가능하고 절대 타자(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은 불교에는 없는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제가 미국 예일대 신학부에서 스탠리 와인스타인 교수의 불교사 강의를 통해 신란이라는 일본 사상가에 대해 듣고 가졌던 놀라움과 흥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정토사상은 불교내의 주류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길 교수는 대승불교의 주류인 선(禪)과 기독교가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던 중 중세 가톨릭의 신비주의 수도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반평생 기독교와 불교 간의 대화 가능성을 놓고 고심하던 나에게 에크하르트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계시였습니다. 서구와 일본의 학자들은 최근 20여년간 에크하르트를 재발견하고 무수한 논문을 쏟아내고 있어요.”

길 교수는 에크하르트 사상의 키워드 중 하나인 ‘Gelassenheit(겔라센하이트)’란 말을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방하(放下)로 번역한다. 세상사에 대한 집착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집착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혹은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놓아버린다’는 당돌한 말까지 해요. 하느님까지 이용해서 자기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인간의 근원적 죄악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는 모든 형상과 이름과 속성을 뛰어넘어 벌거벗은 신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어요. 이는 불교 선사(禪師)들이 말하는 무언(無言) 무념(無念)의 세계와 통하는 것입니다.”

길 교수는 올해 안으로 에크하르트에 대한 국내 최초의 저서를 펴낼 계획이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왜 종교는 서로 대화해야 하는가? 불교나 기독교나 자기 전통 안에서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괴테는 한 언어만을 아는 사람은 어떤 언어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어요. 인식은 비교에서 출발합니다. 남을 아는 것은 자기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종교다원주의 사회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화는 억지로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지요.”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길희성 교수 약력◇

△1965년 서울대 철학과 졸업

△1971년 미국 예일대 신학부 신학 석사

△1977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비교종교학 박사

△1982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

△1984년∼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저서:‘인도철학사’(민음사) ‘포스트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민음사) ‘일본의 정토사상’(민음사) ‘지눌의 선사상’(소나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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