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엄상익/대도 조세형을 다시 보니…

입력 2001-01-17 18:39수정 2009-09-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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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 조세형(趙世衡)씨는 일본 도쿄(東京) 시부야경찰서 유치장에서 초라한 죄인으로 돌아가 있었다. 총에 맞은 오른팔은 뼈가 부서졌다. 그는 손목시계와 라디오를 훔쳤다고 고백했다. 도와준 분들에게 사실이 알려질까봐 경찰에서 그는 가명을 썼고 밀항했다고 거짓말했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왜?”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세콤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서”라고 답변했다. 작든 크든 그는 절도범이었다.

나는 그의 재범 소식을 듣고 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탈주범 신창원은 내게 “도둑질을 수백번 했는데도 가책이 느껴지질 않아요. 제 양심은 병에 걸려 있죠?”라고 물은 적이 있다. 조씨의 변호사로 일할 때 조씨도 내게 ‘절도는 병’이라고 했었다. 그는 스스로 재범의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씨의 재범동기가 병인지, 탐욕인지, 그의 말대로 보안장치 테스트인지를 밝힐 여지는 있다. 조씨는 공사장에서 알게 된 일본인 공범이 있다고 말했다. 그 공범이 도구도 빌려주고, 사다리도 놔주고, 망도 봤다는 것이다. 공범이 잡히면 범행동기 부분이 가려질 것이다. 일본 검사는 현재 주거침입과 공무집행방해, 그리고 총포도검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만 조씨를 기소해놓고 있다.

나는 참회라는 것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낀다. ‘대도’에 관심을 갖고 그를 찾던 수많은 사람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것은 역시 ‘도둑은 어쩔 수 없어’라는 냉랭한 반응과 차디찬 감옥뿐이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변호인으로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의 혹독한 징역생활에 분노하고 순도 높은 신앙에 매료됐었다. 과거의 절도죄는 15년형으로 상쇄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장점만 부각시켰고 결국 나는 거짓말쟁이가 됐다.

사실 석방 당시 그는 사회적 미성년자였다. 종교인들은 성급하게 그를 단상에 불러 세웠다. 그를 이용하려는 ‘종교장사꾼’도 있었다. 언론도 그를 단숨에 뉴스의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가 ‘영혼의 도둑’이 될까 두려웠다. 차츰 그는 큰 그림자를 보고 자신의 덩치가 그만큼 되는 줄 착각하는 동화 속의 어리석은 주인공이 되었다.

꿈과 현실 속에서 그는 갈등했고 차라리 감옥에 있을 때가 더 편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외국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후견인을 자처하던 나의 역할은 어느새 용도폐기됐다. 나는 그를 지켜보며 원죄를 가진 인간에게 교화란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조씨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돌리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조씨 스스로 자신의 교화를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과거 조씨가 일단 감옥에 갇히면 주변의 친구와 여자들은 모두 떠났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무대 위’에 올려 세웠던 사람들은 조씨의 ‘마지막 자신과의 투쟁’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한 조각의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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