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이기주의에 발목잡힌 '지구살리기'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38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열린 유엔기후회의가 일부 국가들의 ‘자국이기주의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끝내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전세계 150여개국 환경장관 및 비정부기구(NGO) 전문가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3일간 진행됐던 유엔기후회의가 25일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회의의장을 맡은 얀 프롱크 네덜란드 환경장관은 25일 폐막 총회에서 “마지막 밤샘 협상에도 불구하고 회원국간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결론을 내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1997년 채택된 교토(京都)의정서를 이행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교토 의정서〓2012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세계적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5.2% 감소시키자는 것이 골자. 의정서는 유럽연합(EU) 8%, 미국 7%, 일본은 6%를 줄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38개 개도국은 감축을 면제받았다. 이 의정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55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하지만 아직 비준국은 주로 개도국인 30개국에 불과하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둘러싼 갈등〓교토 의정서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량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주로 선진 공업국)는 의무량을 초과 감축한 국가(주로 개도국)로부터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EU 국가들은 배출권의 무제한 거래는 교토 의정서의 기본정신을 흐리는 것이기 때문에 제한을 가하자고 주장해왔다. 이에 미국은 배출권이 시장원리에 따라 거래돼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미국 입장에는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한묶음이 되기를 자처한 이른바 ‘우산 국가’들이 동조했다.

▽산림의 기능을 둘러싼 대립〓큰 숲이 많은 미국은 숲의 규모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조정하자고 제의했다. 미국은 세계 산림이 연간 3억t의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회의 중반 1억2500만t으로 낮춘 양보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웨덴 등 EU 국가들은 “미국은 온실가스 감축 대신 산림 조성만으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려 들고 있다”며 반발했다. 프롱크 의장은 5000만t의 절충안을 내세웠으나 미국과 EU 양측 모두 거부했다.

▽갈등의 양대 축〓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방출하고 있으며 미국인은 프랑스인보다 3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방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U 국가들은 이를 지지했다. EU 국가들은 미국 일본 등은 추가부담 및 에너지세 등에 대한 자국기업과 국민의 반발을 우려, 에너지 소비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피스, 지구의 친구들 등 대표적 NGO도 이에 가세했다.

미국 일본 등은 온실가스 감축보다 개도국의 산림녹화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고 반박했다. 또 최근의 이상기후 현상이 온실효과 때문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자연현상이라고 보는 과학자가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망〓두 세력간의 타협안을 만들기 위해 개도국 중심의 이른바 ‘77그룹’은 내년에 다시 기후회의를 열자고 요구했다. 영국 BBC방송은 내년 독일 본에서 기후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미국 일본 등은 EU측 강경 입장을 이끌었던 스웨덴 덴마크 등 북구 4개국과 막후절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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