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유로2000'서 배우는 교훈

  • 입력 2000년 7월 5일 18시 51분


세계 축구계에서 유럽세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나 질적 수준으로 보나 유로 2000 은 월드컵에 버금가는 큰 축구잔치. 다음 월드컵을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마땅히 배울 것을 찾아내야 했다.

우리에게 98프랑스월드컵이 '유일한 교과서'였다면 이번 유로 2000은 '양질의 참고서'라 할 수 있었다.

큰 기대를 안고 현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공항에서 시내를 지나 암스테르담 북쪽 언저리에 있는 골든튤립호텔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에서도 유로 2000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TV를 통해 경기를 관전한다든지 호텔안에 홍보 브로셔가 놓여 있는게 피부로 느끼게 해 준 전부였다.

암스테르담의 공항 이름인 스키폴 에 그 해답이 숨어 있었다.스키폴은 배들이 정박했던 웅덩이 라는 뜻.

공항의 언저리는 원래 바다였다.그 외곽에 둑을 쌓고 물을 퍼낸 다음 육지를 만들어 공항 등 주요 건물을 짓고 요긴하게 쓰고 있는 셈이다.물을 퍼내면서 보니 많은 배들이 가라앉아 있더라는 것.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고 물을 걷어 내고서야 유물인 배도 찾아내고 귀중한 땅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유로 2000도 겉으로는 조용했다.

2년 뒤 우리나라와 일본의 길거리 모습은 어떻까. 우리는 문화 월드컵 을 강하게 부르짖고 있다.물론 전야제나 개회식 등 주요 공식행사는 우리 문화의 특징을 살려 잘 치러야 한다.여기서 그치지 않고 각 도시마다 나름대로 엄청난 문화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다.너무 과도하게 하지 말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월드컵이나 유로 2000 같은 대회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그것은 억지로 만들어 놓은 행사가 아니다.극성스런 응원단들이 자발적으로 빚어내는 길거리 축제가 대종을 이룬다.보기도 좋고 자연스럽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가 준결승을 치르던 날 암스테르담시내는 오렌지색 물결로 넘쳤다.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렌지색 옷을 입고 거리를 메웠다. 물론 상대팀인 청색 이탈리아 응원단도 섞여 있었다.

이들이 모두 경기장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크고 작은 광장에 모여 흥겹게 놀며 자국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나팔과 북을 들고 나와 신나게 연주하며 춤을 추었다.이들을 어떻게 점잖은 정장의 틀 에 묶을 수 있겠으며 답답한 실내에 구겨 넣고 문화행사에 참여하라고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도 이들에게 크고 작은 공간을 제공해주는 일은 연구해야지 덮어놓고 문화행사에만 몰두해서는 안될 듯 싶었다.

이번 조사활동에서 특히 역점을 두었던 부분은 안전대책. 네덜란드 제3의 도시 유트레흐트 근처에 있는 드리베라헌의 경찰청을 찾아가 안전관계 최고 책임자들과 많은 시간을 나누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훌리건들이 영웅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매스컴을 크게 의식한다는 것이며 언론이 무관심해 버리면 제풀에 시들해 진다는 사실이었다.언론의 협조가 훌리건 대책에도 절대 필요하다 하니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결승전이 펼쳐진 로테르담의 페이에노르드경기장은 역시 훌륭했지만 전광판이 없었다.전체적인 구조도 실용적일 뿐이지 예술적 감각이나 어떤 특징이 없었다.우리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경기장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관광에 대한 소회.둑에 구멍이 뚫리자 자신의 팔뚝으로 막아 나라를 구했다는 한스 소년의 전설이 담긴 폴렌담 어촌이나 암스테르담 시내의 안네 프랑크 집 모두가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으나 관광객들로 붐볐다.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더 훌륭한 유물들이 훨씬 많이 있지만 이를 멋지게 알리는 일과 관광상품이 되게 꾸미는 노력과 재간이 부족하다.우리의 노력도 방향이 바뀌어야 하겠다는 것을 절감했다.

최창신(월드컵 한국조직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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