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대법관' 화려한 영예뒤엔 격무와 고독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50분


신임 대법관 6명이 임명 제청된 후인 24일. 이 중 한 사람의 사무실 탁자 위에는 종친회에서 배달된 ‘축하’ 난(蘭)화분이 놓여 있었다. 가문(家門)의 영광이라는 뜻이었다.

법관 최고의 영예이자 ‘가문의 영광’이기도 한 대법관은 과연 어떤 자리일까.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의 로열층(7∼10층)에 자리잡은 그들의 사무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힘들고 고독한 자리▼

“대법관 되니까 좋지요?” 90년대 말 퇴임한 A전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의 출근 첫 날 ‘고참’으로부터 축하성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예”라고 대답했다. 선배의 화답은 예외였다.

“많이 좋아하라고. 오늘만 좋으니까.”

A전대법관은 “선배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더라”고 회고했다. 영예와 영광의 짜릿함 뒤에는 엄청난 분량의 사건과 기록, 그리고 고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는 판결문 쓰는 기계’라는 우리 법원의 현실에서 대법원도 예외는 아니다. 99년 한해 동안 대법관 1인이 처리한 사건 수는 총 1916건. 간단한 신청사건 등을 제외한 본안 재판사건만 1208건이다. 한 달에 본안 사건 100건을 처리한 셈이다.

이처럼 산더미 같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 퇴근까지 법전과 기록, 연구보고서를 검토하는 일로 꽉 채워진다.

대법원은 당사자를 불러 재판하지 않아 법정에서 낯선 사람 볼 일도 없고 그저 재판을 돕기 위해 배속된 경력 15년 전후의 ‘재판연구관’(판사)들만이 오가며 바깥소식을 전한다. 변호사들도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

유난히 넓은 책상 위 여기저기에 기록과 자료 등을 늘어놓고 씨름하다 정오가 되면 대법관 전용 식당으로 향한다.

외부에서 식사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공평무사’해야 할 대법관이 공연히 대낮에 외부에서 외부인과 식사를 하다가는 말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A전대법관은 “식당에는 대법관들이 관행적으로 앉는 고정석이 있어 하루라도 빠지면 다음날 동료들로부터 ‘어디에 갔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귀띔.

같은 이유로 건강 유지를 위한 운동도 ‘나홀로’ 등산이 주류. 그래서 토요일 오후 강남구 청계산 국사봉 주변에는 대법관들이 자주 눈에 띈다. ‘외로운’ 대법관들끼리 등산을 하기도 한다. B전대법관은 “임기 6년이 마치 군대 생활처럼 길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명예와 사명감으로 산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그만두는 사람은 없다”(A전대법관)

대법관의 법정 월급은 198만여원이지만 재판수당과 판공비 등을 합하면 공무원 중 최고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 6년이 법으로 보장되고 ‘최고 법관’의 권위도 주어진다.

C전대법관은 “대법관쯤 되면 돈이 필요 없는 나이”라며 “자신이 내린 판결이 온 국민의 법률생활과 새로운 현상의 기준이 된다는 보람으로 6년을 재직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대법원 판결은 이후 하급심 판결의 기준이 되고 각종 행정행위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또 국민의 ‘인권’도 최종적으로는 이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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