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外華內貧의 발전

  • 입력 2000년 6월 25일 19시 41분


흔히 지식정보 시대로 불리는 21세기에 대비해 우리도 나름대로 꽤 공을 들여왔다. 그 결과 우리가 통신인프라와 인터넷 보급 등 몇몇 첨단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근접하게 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내부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의 현실이 겉만 번지르르한 외화내빈(外華內貧)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식과 정보의 생산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문화인프라가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인터넷망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각종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힘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개개인의 지적 능력이 배양되어야 하며 이것은 꾸준한 독서와 학습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다투어 독서교육을 강화하고 도서관 등 지식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출판사들로 구성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도서관 도서구입비 증액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정부가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 충분한 자료구입비를 배정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거리에서 대국민 홍보행사와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이 제기한 도서구입비 문제 하나만을 보더라도 우리 문화인프라의 후진성은 쉽게 드러난다.

국내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는 선진국 진입을 꿈꾸는 나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해 전체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예산은 198억원이었다. 국민 1인당 416원 꼴이며 이 돈으로는 400여곳에 이르는 공공도서관이 국내에서 간행되는 도서를 한권씩만 구입하려 해도 전체의 14.8%밖에 사지 못한다. 미국은 의회도서관 한 곳이 연간 7억달러(약 8000억원)의 도서구입비를 쓴다고 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새로운 책을 구입할 수 없는 도서관은 ‘죽은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도서구입비 문제는 시민단체들이 캠페인에 나서기 전에 정부가 능동적으로 해결했어야 했다. 부실 금융기관에 투입되는 공적 자금이나 고속전철 등 사회간접자본에 투입되는 금액은 조 단위부터 시작된다. 이에 못지 않게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할 것이 바로 문화인프라인데도 여기에 들어가는 돈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정부가 지식정보사회를 맞아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고 도서관 같은 보다 근본적이면서 별 생색이 나지 않는 과제는 소홀히 다룬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학계에 팽배한 인문학에 대한 위기의식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울러 지적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각급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등 이번 캠페인을 계기로 21세기에 대비하는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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