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동명왕릉

  • 입력 2000년 6월 16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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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 등 우리 역사에서 ‘고’자로 시작되는 3개국 시조의 무덤이 있다.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무덤이 평양 인근 강동에,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의 능이 평양시내 역포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 왕건의 무덤은 개성에 있다. 우리 역사의 출발점인 단군과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 시조의 무덤은 국가와 역사의 연원(淵源)을 따질 때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 가운데 단군릉과 동명왕릉은 현재 모습으로 단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군릉은 ‘평양 강동에 단군묘로 전하는 무덤이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옛 역사기록에 나오는 바로 그곳이지만 확인이 불가능했다. 북한은 90년대 무덤 내에서 남녀 두 사람의 유골을 발굴한 데 이어 과학적인 연대 측정법을 이용해 5000년 전의 것임을 밝혀냈다고 했다. 단군 부부가 함께 묻힌 묘라는 결론이었다. 북한이 이를 근거로 단군릉을 개건(改建)한 것은 94년의 일이다.

▷동명왕릉은 74년 김일성대학 발굴단에 의해 동명성왕, 즉 주몽의 무덤임이 확인됐다. 고구려 벽화가 발견된 데다 왕릉임을 입증하는 금관의 잔편이 출토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한 학계는 북한과의 교류 단절로 인해 이런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알려진 것만 갖고서는 5000년 전 단군 유골이 어떻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고구려 주몽이 도읍했던 곳이 졸본(현 중국 랴오닝성)인데 왕릉이 왜 평양에 있는지도 수수께끼다.

▷엊그제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 남한 대표단은 동명왕릉을 찾았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이 이곳을 안내한 것을 보면 동명왕릉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듯하다. 하지만 남한 학자들이 이 왕릉에 반신반의하는 등 남북한 사이에는 여전히 시각차가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분단 55년 동안 역사 연구에서도 꽤 거리가 벌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물질적 제도적 기반을 조성하는 일반 교류와는 달리 역사 예술 등 문화 교류는 보다 근본적인 정신적 통일을 지향한다. ‘진정한 통일’을 이루려면 남과 북은 무엇보다도 문화 교류에 특히 공을 기울여야 한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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