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외국인 한국주식 왜 마구 사들일까?

  • 입력 2000년 6월 11일 18시 30분


외국인들이 최근 8일간 2조2000억원어치를 순매수하자 증권가가 일제히 놀라고 있다.

최근 대거 유입된 자금은 최근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부분 미국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홍콩 등 아시아에 머물던 단기성 자금이 외국유입자금의 주종을 이루는 것으로 추정돼왔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7일까지 외국인 순매수규모는 1조962억원으로 지역별로는 △북미 87.6% △유럽 6.0% △아시아 4.5% 등이었다. 이 기간중 뮤추얼펀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1조1032억원어치를 순매수했고 개인과 기타법인은 7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 순매수의 배경을 설명하는 가설로는 △국가신용등급 상승 같은 대형호재를 간파한 선취매설 △주가반등에 편승한 단기 모멘텀투자설 △한국증시 상대적 저평가설 등이 있다.

대형호재설에 대해선 ‘대형호재가 없어도 순매수 강도는 커질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예컨대 3월 2,3일 이틀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주식에 대한 1조2000억여원어치의 외국인 순매수를 이끌어낸 것은 ‘D램 업황 개선’이라는 업종재료였다.

모멘텀투자설은 주요 순매수 세력인 미국 기관투자가들의 평소 투자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또 단타에 능한 헤지펀드들이 개입한 흔적이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외국증권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국내주가가 싸니까 들어왔다’는 평범한 설명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연초부터 ‘아시아에선 한국증시가 가장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도 투신권문제, 현대문제 등 불안한 악재에 가로막혀 투자시기를 늦춰오다가 5월31일을 D데이로 잡았다는 설명. 이날은 한국 최대 재벌인 현대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겠다’는 메가톤급 호재를 발표한 날이다.

미국에서는 전날 금리인상 우려 감소와 기술주 주가가 바닥권이라는 인식 확산에 따라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의 폭등을 기록했었다.

경력 15년의 한 국내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외국인이 순매수공세를 취하면 마치 무슨 음모라도 있는 양 배경을 따지고 이익실현 매도를 하면 한국을 떠난다고 호들갑 떠는 태도를 이젠 버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 외국증권사 이사는 “외국인은 국내투자자들보다는 합리적이고 똑똑하다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은 시시콜콜한 국내사정은 잘 모르지만 여러나라 증시를 대상으로 위험분산 투자를 하기 때문에 국내투자자들과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는 지적이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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