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藥, 믿고 먹을 수 있게

  • 입력 2000년 6월 2일 19시 04분


한국사람들처럼 약을 쉽게 사먹는 경우도 드물다고 한다. 따라서 약을 잘못 먹거나 지나치게 많이 복용하는 오남용의 문제가 늘 뒤따랐다. 이 약 저 약을 자주 먹다보니 항생제를 먹어도 몸 안의 세균이 죽지 않는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5배 이상 높아졌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흔히 먹어온 약들 중 약효가 떨어지는 약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본지의 특별취재기사에 따르면 이렇듯 약효가 떨어지는 약들이 시중에서 판을 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약에 대한 정부의 관리 및 감시시스템이 대단히 미흡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약의 90% 이상이 이른바 ‘카피 약’으로 알려져 있다. 특허가 해제돼 누구나 제조할 수 있는 약이다. 국내 제약업체들은 막대한 연구개발비가 드는 신약개발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대부분 카피 약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카피 약도 제대로 만들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다수 영세한 제약업체들로서는 가격경쟁을 위해 값싼 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폐해가 곧바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현실이 이러한데도 이들 카피 약에 대한 정부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약의 경우는 동물 및 임상실험 등 엄격한 과정을 거치지만 특허기한이 끝난 카피 약의 경우 대체로 형식적인 서류심사에 그치고 있다는 보도다.

이러다 보니 같은 성분이라고는 하지만 애초 제약허가를 받을 때 사용했던 원료보다 약효가 떨어지는 값싼 원료로 대체한 경우도 그냥 넘어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또 유통중인 약을 무작위로 수거해 품질검사를 한다고는 해도 그 역시 대충 넘어가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선진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감독 관리 인력과 낮은 예산 등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을 감안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약의 문제를 이렇듯 적당히 넘길 수는 없다. 앞으로 의약분업 과정을 통해 약효가 떨어지는 약들이 시장에서 거의 퇴출될 것이라고 말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정부는 약의 원료구입단계에서부터 제조와 유통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검증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비하고 하루빨리 이를 시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약에 관한 한 이제는 안심하고 복용해도 좋다는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