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부모와 자녀의 윈윈게임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1분


A군(16·서울 모고교1년)은 학업성적이 너무 떨어진데다 더 이상 학교 다니기를 거부해 부모와 한국청소년상담원을 찾았다. 상담원측은 단번에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명문 S대를 졸업했고 의사로서 성공한 편인 A군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아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일일이 지시하고 수정해주는 스타일이었다. 또 끊임없이 자신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았음을 예로 들며 우등생이 될 것을 기대했다(병리적 이중속박). 평소 소극적인 성격이던 A군은 고교 진학 후에는 급우들에게 왕따를 당한데다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중2년생인 P양(14)의 아버지는 Y대 출신의 금융권 중역. 그는 중간 정도인 딸의 성적에 대해 늘 불만족스러워하고 잔소리와 엄격한 시간관리를 요구하는 편이었다. 그는 평소 딸에게 “명문대를 나와야 인간노릇을 할 수 있다”고 다그쳤다. 아버지와 불화를 빚던 P양은 결국 비행학생들과 어울렸고 가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주변인물은 하나같이 P양을 온순하고 개구쟁이이며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하는 재미있는 아이로 알고 있으며 친근감을 갖고 있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이런 유의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보통가정에서 겪고 있는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은 2일 청소년의 달인 5월을 맞아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보통의 일반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 문제 사례들을 공개하고 부모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마음에 안차는 자식을 훌륭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당신이 죽어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조금은 살벌한 말이기는 하지만 청소년문제 전문가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학습부진 학교생활부적응 가출 등 문제를 나타내고 있는 청소년 중 그 원인을 파고들어가 보면 의외로 부모, 특히 아버지가 원인제공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옛날에 이렇게 했다. 왜 스스로 알아서 할 줄 모르느냐. 공부해라. 놀지 마라….’

문제는 부모의 간섭과 잔소리로 자녀가 거의 정신분열 직전에 이를 정도가 되어 있거나 부모의 기에 눌려 매사에 소극적인 청소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정작 해당 부모들은 자신들이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부모일수록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정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녀를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자녀에게 부모의 일방적인 가치관(성적제일주의, 출세주의 등)을 주입하려다가는 부자간의 애정도, 자녀의 진취성도 함께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고. 즉 루즈루즈(이중 패배) 게임이 된다는 말이다.

부모자녀간의 윈윈게임은 먼저 자녀를 소유개념에서 해방시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데서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청소년의 달을 맞아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와 자녀가 다같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인지를 다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정동우<사회부 차장>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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