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SOFA 탓하기 이전에…

  • 입력 2000년 5월 1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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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주한미군 매카시 피고인(22)의 도주사건은 불평등한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의 맹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다.

우리 국민을 숨지게 한 미군을 구속하지도 못하고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그의 신병을 미군측에 맡겨놓아야 하는 현실은 민족적 자존심을 흔들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해온 대로 국민의 이런 ‘반미(反美)적 감정’만을 무기 삼아 SOFA 개정 협상에 나선다고 한들 과연 미국측을 설득할 수 있을까.

SOFA의 형사재판 관할권 조항 대부분은 ‘불구속 재판’ ‘무죄추정’ 등의 원칙 아래 피의자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하는 미국 사법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기 때문. 대한변협 인권위원 박찬운변호사는 “한국의 인권과 사법제도에 대한 미국측의 불신이 SOFA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말했다. 미 합중국 국민을 인권보호에 소홀한 한국 사법기관에 맡길 수 없다는 불신이 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군측이 매카시 피고인의 신병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건을 뒤집어보면 당시 ‘중죄인’인 매카시가 인신 구속과 감시 없이 변호인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피고인의 권리’를 누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피고인은 어떤가.

인권운동사랑방에 따르면 광주법원 미결수 탈주사건 뒤인 3월 서울고법 3개 법정을 실사해본 결과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수갑을 채우는 관행이 슬그머니 되살아나 있었다고 한다. 사랑방측은 ‘피고인이 수갑이나 포승에 묶인 채 법정진술을 하면 충분한 방어권을 실현 못하지 않느냐’는 내용의 질의서를 법원측에 보냈다.

우리 스스로 떳떳하고 자신 있을 때 미국측에 “너희가 우리를 못믿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SOFA’에 가장 분노해야 할 측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미국이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처럼 여기는 우리의 검찰과 법원이 아닐까 싶다.

부형권<사회부>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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