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이회창 대통령' 가능성은?

  • 입력 2000년 4월 28일 18시 46분


이번주 지방나들이를 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밝고 발걸음도 가벼워 보였다. 4·13총선에서 승리한데다 여야영수회담을 통해 자신의 당내외 입지가 한결 단단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이총재가 2002년 대권고지에 성큼 다가섰다는 자타의 인식이 그의 얼굴에 여유있는 미소를 띠게 하는 것 같다.

이번 총선은 ‘이회창과 이인제(李仁濟)를 위한 잔치’였다는 얘기도 있다. 특히 이회창총재로서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당내의 위협세력을 상당부분 정리함으로써 대선준비국면을 ‘이회창대세론’ ‘대안부재론’으로 몰아갈 힘을 얻었다.

▼'청와대주인'가등기

주위에서 아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이총재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차기 청와대주인으로 가등기를 해놓았다”고 큰소리친다. 엊그제 이총재가 부산진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시민들로부터 ‘대통령 이회창’을 연호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는 보도다. 이런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총재의 모습은 마치 ‘대통령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고 꼬집은 사람도 있다.

‘대통령 이회창’― 이 말의 실현가능성은 몇 %나 될까. 그 가능성을 따지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이번 총선상황을 보면 한나라당의 승리이지 이회창총재의 승리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선 한나라당이 영남을 휩쓴 것은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반(反)DJ’정서에 의한 반사이익 때문이라는 것은 이총재도 잘 알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총재 경선 출마를 선언한 강삼재(姜三載)의원의 말대로 ‘한나라당에 투표한 유권자 중 과연 몇명이나 이총재를 보고 찍었겠느냐’는 물음에 이총재는 어떤 대답을 할지 의문이다. 특히 지역감정에서 보다 중립적이라고 할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대통령선거 상황은 총선과는 아주 다르다. 다음 대선에서 이총재가 이번 총선에서처럼 영남표를 싹쓸이하듯 얻을 수 없을 것이고 또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 아무리 ‘영남몰표’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대통령이 될 사람은 영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아야 새시대에 걸맞은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는 특정지역의 ‘선생님’이어서는 안된다. 그 지도자의 출신지역이 어디이건 이제는 지역별 편가르는 식 득표로 당선되어서는 안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임기를 끝으로 ‘3김식 정치’의 가장 큰 폐해인 지역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 이겨야

이총재가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영남표 못지않게 호남표도 많이 얻어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후보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비록 1당은 되지 못했지만 수도권과 강원 충청에서 승리하거나 선전했다. 영남에서도 비록 당선자는 못냈으나 몇곳에서의 득표율은 괜찮았다. 전반적으로 전국 정당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렇게 보면 이총재는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이겼다 해서 대선레이스에서 남보다 앞서 있다고 볼 수 없다. 여러명의 잠재적 대권후보들과 출발선에 함께 서 있다고 보는 게 옳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지금까지는 상대방의 실수로 득점을 했다면 앞으로는 자기 실력으로 점수를 착실히 쌓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벌써 당내에서부터 ‘1인독재’니, ‘사당화(私黨化)’니, ‘포용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총재는 명실상부한 당내 민주화를 이루지 못하고는 더 큰 정치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 누구보다도 ‘3김식 정치’의 청산을 외쳐왔으니 3김과는 차원이 다른 정치의 수범을 보여주고 새시대의 비전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특히 남북문제를 비롯한 국가적 시대적 과제에 대해서는 논리적이고 현실성 있는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이회창’의 가능성에 대한 해답은 앞으로 2년 몇개월간 이총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김대통령과 약속한 대로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려면 발목만 잡는 야당, 반대만하는 야당의 총재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보다 큰 시각에서 발목 잡을 것과 협조할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대중적 인기’ ‘대통령이 되는 비법(?)’에만 점점 마음이 쏠릴지도 모르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된다.

<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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