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앨런 아이버슨 그는 최고다.

  • 입력 2000년 4월 1일 07시 40분


앨런 아이버슨

'차세대 농구황제'인가

이기적인 '득점기계'인가

샤킬 오닐(LA레이커스)과의 숨막히는 득점왕 경쟁으로 새 천년 NBA 정규시즌 막바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앨런 아이버슨.

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번으로 필라델피아 입단. 96-97시즌 신인왕. 98-99시즌 데뷔 3년만에 득점왕 등극, NBA역사상 최단신(1m83)득점왕, NBA all first team 선발. 99-00시즌 올스타전 출전. 리그 최고로 평가받는 스피드, 현란한 크로스오버 드리블, 폭발적인 페네트레이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득점포.

NBA 데뷔 4년차에 불과한 풋내기 아이버슨은 이미 필라델피아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했다.

필라델피아 팬들은 찰스 바클리가 끝내 이루지 못한 챔피언의 꿈을 아이버슨이 이뤄줄거라 믿고 있다.

슬램덩크의 원조로, 또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선수 중 한명으로 필라델피아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 Dr.J" 줄리어스 어빙이 1983년 팀에 마지막 챔피언 십을 안겨준 것처럼 필라델피아 팬들은 머지않아 아이버슨이 우승 트로피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넥스트 조던을 언급하는 사람들에게 주인공은 아이버슨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빈스카터(토론토 랩터스)와 코비 브라이언트(LA레이커스)에게 쏠려있다. 그들은 좀처럼 앨런 아이버슨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 앨런 아이버슨이 가진 '배드 보이'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갈래갈래 땋은 머리, 양팔에 가득한 문신, 불량끼 가득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만들어내는 수많은 구설수, 그리고 데뷔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료들과의 불화.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운동 선수들도 단정한 머리모양을 하고, 얌전한 옷을입고, 올바른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아이버슨은 인정하기 싫은 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 버슨을 이기적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렇다면 아이버슨은 정말 이기적일까?

한게임 평균 25개가 넘는 야투시도는 그의 이기심을 지적하는 단골메뉴. 그러나 색안경을 벗고 냉정하게 살펴보자.

아이버슨을 제외한 필라델피아의 어느 누가 평균 15점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가. 올 2월 시카고에서 토니 쿠코치가 팀에 합류하기 전 필라델피아 선수 중 평균 두자리수 득점을 올려주는 선수라곤 타이론 힐(11.8득점)과 테오 래틀리프(12.4득점)뿐이었다.

허약한 공격력. 누군가는 득점을 책임져야 하고 아이버슨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를 보고 그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앨런 아이버슨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만약 그가 얼마나 힘겨운 성장과정을 겪었고 그것을 극복하며 만들어낸 강인한 의지를 이해한다면 아이버슨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열여섯살에 아이버슨을 낳은 엄마와 아버지의 가출. 집이 너무 가난해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자주 끊기는 움막같은 집에서의 생활. 가장 친한 친구가 바로 자신의 코 앞에서 살해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자란 아이버슨.

슬럼가의 아이들이 그렇듯 아이버슨도 운동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잊으려했다. 농구보다 미식 축구를 더 좋아했던 아이버슨은 베델 고교 2학년때 버지나아주 챔피언 팀의 스타 쿼터백이자 농구 팀의 유능한 포인트 가드였다. 그러나 아이버슨은 고교 3학년의 어느날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들과 볼링장을 찾은 아이버슨은 '니거'라고 놀리는 백인들과의 패싸움에 말려들게 되고 겨우 17살의 나이에 '범죄자'가 되어 4개월간 감옥생활을 경험한다. 재판 과정에서 아이버슨은 별 잘못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싸움 당시 그의 편을 들어준 백인은 한명도 없었고 그들 중 그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다.

"감옥에 있을 때 난 내가 겪고있는 일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내게 신의를 약속했던 사람들 중 그것을 지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내게 한심한 놈이 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난 하루 하루를 마지막날 처럼 살았고 그건 지금 내가 매 경기를 임하는 제세이기도 하다. "

미식 축구선수로 대성하길 원했던 '범죄자' 아이버슨은 메릴랜드대 입학이 좌절된 후 그를 받아준 조지타운대학에서농구에 전념하게 된다.

패트릭 유잉, 디켐베 무톰보. 알론조 모닝을 배출한 농구 명문 조지타운은 듀크대와 더불어 졸업을 하기 전 절대 프로행을 하지않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조지타운의 수십년 전통을 깨고 아이버슨이 2학년을 마친 1996년 드래프트에 응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졸지에 아이버슨은 돈에 눈이 멀어 어려울때 자신을 받아준 조지타운의 전통을 망가트린 '배은망덕한'인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백혈병에 걸린 누이의 수술비를 마련 할 길이 없었던 아이버슨이 존 톰슨 감독의 허락하에 드래프트에 응햇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NBA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앨런 아이버슨. 그가 겪었을 좌절과 고통은 흔치 않다. 그의 불량스런 이미지는 맨 몸뚱이 하나로 세상과 겨루며 얻은 자랑스런 훈장이다.

필라델피아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That's My Boy라는 문구를 들고 열렬히 자신을 응원해주는 어머니를 가장 사랑한다는 아이버슨.경기가 끝난후 락커룸에서 자신의 두 아이와 즐겁게 장난치는 모습이 진짜 아이버슨의 모습이 아닐까? 아마도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성난 모습으로 코트위에서 세상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해식<동아닷컴 기자> pistol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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