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곽승준/물값 올려 절약 유도를

  • 입력 2000년 3월 20일 19시 32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는 ‘물과 다이아몬드의 패러독스’가 나온다.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물보다 귀중한 재화를 찾아보기 힘든데도 물 값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었다. 반면에 단지 장식용으로만 사용되는 다이아몬드는 천정부지의 가격으로 거래되니 역설이라는 것이다.

후세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희소성과 교환가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사용가치가 큰 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지만 사용가치가 거의 없는 다이아몬드는 희귀하기에 교환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막이나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이 희소하기 때문에 물 한잔과 가지고 있는 모든 다이아몬드를 바꿀 정도로 물의 가치가 커질 것이고 물의 낭비란 꿈조차 꾸지 못할 것이다.

21세기에는 사막이나 바다에서 일어날 법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국제기관의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물 수요는 인구증가 산업화 등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반면, 물공급은 수자원 고갈 및 수질오염의 악화 등으로 급감해 수자원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제적인 물 분쟁까지 야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엔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가 물 압박 국가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다목적 댐을 건설해 물 공급을 늘리려는 수자원 공급정책이 호응을 받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 선호와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국민이 용수공급의 확대에 큰 비중을 두었다면 이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댐건설로 파괴되는 생태계의 리스크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반영한다.

물 부족이란 물 공급과 수요의 갭이다.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선 물 공급을 늘리든가, 물 수요를 감소시키는 두 가지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공급증가가 국민적 동의를 받지 못한다면 수요감소로 갈 수밖에 없다. 세계적 추세를 보더라도 공급증가보다는 수자원절약, 환경보호로 이어지는 수요관리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도 일종의 재화이기 때문에 가격에 수요가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1인당 물 소비량은 일본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 비해 높다. 반면에 물 값은 공급원가에도 턱없이 부족한 만큼 낮다. 물 수요 관리 차원에서 가격인상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정부는 물 공급 확대의 대안으로 절수기기 보급, 누수방지시설 확대 보급, 중수도 보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경제성을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 사용량이 1일 300t이면 수도요금이 연간 5000만원인 반면에 재활용을 위한 중수도는 시설비 5억원과 연간 운영비 7000만원이 소요된다. 따라서 현재의 물 값 수준에서는 중수도 설치를 통해 재활용하고 절약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정부가 중수도 및 절수기기의 설치를 의무화할지라도 그 사용 여부는 소비자의 몫이다.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캠페인 차원을 넘어 행동으로 유인할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즉 “돈을 물 쓰듯”에서 “물도 돈”이라는 실제 상황이 오지 않는 한 물 절약 정책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렇듯 물 수요관리 정책에서 가격인상은 단순히 생산원가를 보전하기 위한 물 값 현실화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수도요금 누진제 및 절수형 수도요금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일정기준 이상의 물을 사용하는 가구는 수도요금이 현재보다 100% 이상 오르게 된다. 다이아몬드를 아끼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싸기 때문이다. 물 소비에서도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이 물을 아끼고 절약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비싼 만큼 다이아몬드와 같이 깨끗하고 맑은 물을 원한다는 것도 정책 결정자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박은선기자> sunney7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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