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뜬다]사치품업계 M&A쟁탈전

  • 입력 2000년 3월 1일 19시 31분


2000년대를 눈앞에 둔 작년 유럽 사치품업계에는 ‘총성’과 ‘포연’이 멈추지 않았다. 봄에는 프랑스의 루이뷔통 모에 에네시(LVMH)그룹이 이탈리아 구치그룹을 인수하려고 시도해 혈전이 벌어졌다. 가을부터는 유명 브랜드 쟁탈전이 치열했다.

작년 2월 LVMH는 구치그룹 주식을 집중매입해 지분이 34.4%까지 오르자 적대적 인수합병을 공식 선언했다. 구치는 스톡옵션을 발행해 LVMH의 지분을 25%로 떨어뜨렸다. 3월에는 프렝탕백화점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피노 프렝탕르두트(PPR)가 백기사로 등장해 구치 지분의 42%를 사들였다.

▼작년 30件 1년새 2.5배 증가▼

뜻밖의 복병 때문에 ‘이탈리아 원정’에 실패한 LVMH는 시계 쪽으로 발길을 돌려 스위스의 고급시계 및 보석 브랜드인 쇼메, 타그 호이어, 에벨, 제니트를 잇따라 인수했다. 의류 브랜드 레지나 루벤스, 토마스 핑크, 갱USA, 조셉 등도 사들였다.

PPR를 대주주로 영입한 구치는 바게트핸드백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를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제시 가격은 7억1000만달러(약 7810억원). 그러나 연합전선을 구축한 LVMH와 프라다가 인수전에 끼어들었다. 결국 펜디의 소유주인 파올라 펜디 등 5자매는 경영권 유지 조건으로 LVMH-프라다에 지분의 51%를 9억달러에 넘겼다.

LVMH에 반격을 당한 구치는 대신 프랑스 브랜드 이브 생 로랑의 모회사 사노피 보테를 10억달러에 사들이고 신발브랜드 세르지오 로시도 인수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 희소성을 울타리 삼아 소수 특권층만을 대상으로 가족경영식 폐쇄 경영을 해오던 유럽 사치품업계는 지금 지각변동 중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캘빈 클라인, 도나 카렌, 랄프 로렌 등 미국 브랜드들의 유럽 시장 도전이 거세지면서 인수합병 바람과 함께 시장 재편이 본격화됐다. 아서 앤더슨 회계법인에 따르면 97년까지 연간 4,5건에 불과하던 유럽 사치품업계의 인수합병은 98년 12건, 작년에는 무려 30건으로 늘었다.

▼"판매망-인지도 선점하라"▼

“전세계에 최소한 80개 이상의 직영 점포망이 없으면 국제 브랜드로 명성을 유지할 수 없어요. 매출액의 10분의 1은 광고홍보에 써야 성공한다는 것이 상식이죠.” 프랑스 경영자문회사인 유로스타프의 알렝 프티장사장은 판매망과 인지도 확보가 사치품업계의 핵심요소라고 지적했다.

▼佛-伊-스위스 4파전 양상▼

프랑스의 업계전문지 위진 누벨은 유럽 사치품 업계의 4대 업체로 프랑스의 LVMH, 스위스의 리치몬트, 이탈리아의 구치와 프라다를 선정했다. 위진 누벨지는 올해 세계 사치품 시장 규모를 96년에 비해 28% 증가한 3600억프랑(약 61조2000억원)으로 추정한다.

프랑스 사치품업체들의 이익단체인 코미테 콜베르의 알랭 테텔봄회장은 “창의성 예술성 희소성이 중시되는 사치품업계는 로테크산업이면서도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업종”이라며 “시장전망이 밝아 브랜드간 인수경쟁은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佛 루이뷔통 아르노 회장◇

작년 여름 프랑스 루이뷔통 모에 에네시(LVMH)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50)이 사치품 전자상거래 전문업체 ‘유로 웹’을 설립한다고 발표하자 프랑스 언론들은 “아르노의 사재기 바람이 또 터졌다”고 비아냥거렸다.

아르노 회장은 이에 아랑곳없이 향수와 화장품 전문 사이버숍인 ‘세포라 닷컴’을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올해 5억달러(약 5500억원)의 자금으로 20개 이상의 인터넷 기업에 투자, 전세계를 잇는 사치품 판매망을 구축하겠다는 것.

그는 뉴욕 록펠러센터 매장을 비롯해 작년에만 127개의 새 점포를 냈다. 크뤼그 샴페인, 샤토 이켐, 펜디 등 10여개의 브랜드도 인수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560억프랑(약 9조52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미국의 경제전문 잡지 비즈니스 위크는 ‘1999년 세계의 최고 경영자 25인’에 아르노 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 명문 파리정치학교와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아르노 회장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건설회사를 바탕삼아 89년 샴페인 코냑업체 모에에네시와 패션업체인 루이뷔통의 합병으로 태어난 LVMH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디오르, 라크루아, 셀린, 지방시, 겔랑 등 유명 브랜드도 차근차근 인수해왔다.

전세계 사치품업계 통일을 꿈꾸는 아르노 회장은 유럽적인 장인 기질에다 미국적인 효율적 사업가 기질을 잘 조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리〓김세원특파원>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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