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우리도 세끼 밥 먹을 줄 알아요'

  • 입력 2000년 1월 21일 20시 12분


경제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지만 과거 상태로 회복되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결식아동 문제다. IMF체제 이전인 97년 1만1000명에 불과했던 결식아동 수가 경제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98년에 13만9000명으로 크게 늘어난 것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띄게 경기 회복세를 보였던 지난해에 결식아동은 15만1000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올해에는 이보다 더 늘어나 16만명을 넘어서리라는 게 관계당국의 예측이다.

무료점심이 제공되지 않는 겨울방학은 결식아동들에게 ‘춥고 배고픈 나날’이다. 학교측은 방학중에 지정식당을 정해 밥을 먹도록 하고 있지만 이용률은 60%가 채 안된다고 한다. 냉랭한 분위기의 식당보다는 차라리 굶는 쪽을 택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은 탓이다. 결식아동 문제가 급식예산을 얼마 더 확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사례다. 결식아동이라는 딱지표가 붙어 자존심과 체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물질적 지원보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보살펴 주는 ‘따뜻한 마음’을 원한다.

경제가 나아졌는데도 결식아동이 늘어나는 현상은 빈부격차의 확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 ‘가진 사람’들이 지녀야 할 ‘베풂의 철학’이 여전히 결핍돼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풍요와 여유로움이 흘러 넘치고 있다. 주식투자와 벤처기업으로 돈방석에 앉은 사람들이 속출하고 주말 고속도로는 행락인파로 붐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다수는 어린 아이들이 추위속에 끼니를 거르는 기막힌 문제를 잊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다.

며칠전 정부는 올해 16만4000명분의 중식을 제공하는 내용의 결식아동 대책을 내놓았다. 결식학생이 늘어난 만큼 예산을 늘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정부의 이같은 발상은 너무 안일하고 평면적이다. 결식학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다. 식사를 준다고 해도 먹으려 하지 않는 게 결식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국회앞에서는 결식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들은 가녀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도 세끼 밥을 먹을 줄 알아요” “방학에도 밥을 먹게 해주세요”라고. 새 천년의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 것도, 총선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식학생 문제와 같은 보다 절실한 것에 정치권이 눈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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