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규식/의보통합 부작용 만만찮다

  • 입력 1999년 8월 10일 19시 37분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은 최근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보편성이 없는 독특한 ‘한국형’이라는 통합모형의 도입을 실험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지난해 10월에는 지역의료보험조합을 통합하여 공무원 교직원 의료보험조합과 합치더니 2000년에는 직장조합마저 통합하여 관리체계를 하나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자영자의 소득이 근로자에 비하여 제대로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통합관리할 경우 근로자의 부담이 증가된다. 의료기관을 민간이 소유하는 경우 지역마다 의료기관 분포가 달라 의료 이용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통합이 자칫 보험료부담의 불공평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전 국민에게 단일제도로 의료를 보장할 경우에는 국가가 의료기관을 소유하고 세금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국가공영제 방식을 택하는 것이 보편적 원칙이다.

지난해 10월 지역의보조합을 하나로 통합한 후 보험료 징수의 어려움, 의료비관리의 어려움, 보험료 인상의 어려움 등 재정관리에 수많은 허점을 드러냄에 따라 국고 지원이 자꾸 늘어나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980년 처음 통합론이 제기될 때 통합의 이점으로 국고지원 없는 보험재정운영을 주장하였는데 통합은 그 반대로 국고지원이 증가되어야 할 형편이다. ‘한국형’에 도취되어 통합을 강행하던 정부도 최근에야 자영자의 소득 파악미비로 근로자와 자영자의 재정통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통합법안을 시행도 하기 전에 관리는 통합하되 재정은 분리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는 등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와 자영자의 재정 통합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통합 작업을 중단하고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으로 생긴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 정책의 순서에 맞다.

90년대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의료보장에서도 분권화 지역화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추세에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당초 택한 조합방식은 세계적인 추세와 합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이 좋다고 정부가 믿는다면 조합방식의 직장보험과 통합방식의 지역보험을 향후 3년간 경쟁시켜본 뒤 어떤 제도가 한국 실정에 맞는지를 검증한 다음에 정책결정을 내릴 것을 제안한다.

조합을 하나로 통합한 후에 재정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다시 조합방식으로 되돌아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단계는 영국형의 국가공영제로 가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국가공영제가 한국의 현실에 적합하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한국노총이통합에반대하고1000만명 서명운동을 하는 이유는 통합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고 복지에 역행하는 조치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경제발전과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온 제도로 평가받아 왔다. ‘한국형’ 운운하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어설픈 통합모형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는 것은 혼란만 부를 뿐이다.

이규식(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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