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준/국가관리의 정치가 아쉽다

입력 1999-07-28 19:35수정 2009-09-2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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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은 또 다시 선거전의 정치로 전환하고 있다. 이 결과 국가관리의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 지역과 인물 중심으로 헤쳐모이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가까스로 국가부도를 면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다.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비전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를 복원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전개되는 한국정치의 단면을 보면 1920년대 이탈리아 사회학자 로베르 머셀이 한 말을 다시 연상케 한다. 그는 당시 유럽 정당들의 이합집산을 교향악단의 연주에 비유해 이렇게 말했다. “지휘자는 바뀌었어도 음악은 꼭 같다.”

오늘 한국정치에서는 옛 지휘자들이 다시 지휘봉을 잡겠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새로운 악단을 창립하려는 기도와 이에 대한 반발로 인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듣기 거북한 잡음만이 들려온다. 무엇보다도 지휘자들과 단원들은 주권자인 청중의 열망과 요구를 도외시하는 것 같다.이같이 한국 정치는 다시 자기들끼리 모이고 헤어지는 구태를 재연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파쟁과 논쟁은 국민생활과는 관계없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자아내고 심지어 냉소주의를 만연시킨다. 더욱이 연속적으로 터져나오는 각종 비리는 경찰 검찰 정당 국회 등 기존 제도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있으니 이것은 민주주의제도 발전을 위협한다. 이 와중에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벗어나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필요한 국가관리 체제를 완비하는 노력이 권력 게임에 매몰되고 있다.

우리는 현재 극복중인 외환위기가 국가관리의 실패에서 왔다는 사실을 재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보 금융 및 생산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고 국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산업의 구조조정과 각종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이 과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국가관리는 해외에서 국가신인도를 유지하고 국내에서는 효율성과 정당성을 겸비할 수 있는 체제를 구성할 때 실현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관리는 정부(공공부문) 시장(민간부문) 및 시민사회(NGO) 간에 조화와 협조를 원만하게 유지할 때 그 효력을 발휘한다. 정부는 투명성과 책임성을 함께 과시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관료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솔해야 한다. 시장은 자율적인 교환을 통해 경쟁을 극대화해야 한다. 시민사회도 자율적으로 조직돼 특수이익집단에 속하지 않는 개인 및 집단의 요구와 공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 세 부문은 때로는 갈등하지만 공공선을 위해 상호보완하고 신뢰를 쌓아갈 때 국가와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우리 정치인들도 이러한 국가관리에 눈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은 지역과 인물을 넘어 다양한 세력과 폭 넓은 합의와 연합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한국사회는 양극화하고 있고 그 결과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소외되고 있는 계층과 사람들의 이익과 견해를 국가관리에 반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실업 고용 교육 세금 및 환경 등에 대한 솔직한 토론과 협상을 활발하게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담론과 과정을 거쳐서 합의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 단순히 국회에서만 다수당을 달성하는 것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다.

물론 정치는 현실이다.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배연합이 필요하다. 우선 이렇게 안정세력을 규합한 뒤에야 효율적 국가관리가 보장될 수 있다. 국회에서 안정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역연합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도 반대당을 포함한 대다수 유권자들이 시급하게 요구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때만 정당화할 수 있다. 특히 급속도로 정보화하고 분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들만이 계획한 연합이 선거결과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바람직한 국가관리에 필요한 비전과 선택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정치가 요망된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도 정치는 ‘가능의 예술’이라고 했다. 국가와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척결하는데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지지세력은 저절로 규합될 것이다. 반대당보다도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개혁을 기대해 본다.

안병준 (연세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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