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인길/관료집단의 분파주의

  • 입력 1999년 3월 10일 19시 24분


관가(官街)가 술렁댄다. 한동안 자숙하며 조용하던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눈에 불을 켜고 살기가 등등하다. 업무는 뒷전이고 오로지 관심은 ‘우리부처’의 권한 향배에 쏠려 있다.

관료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동네다. 기자가 오랫동안 수많은 경제관료를 만나며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관료사회는 참으로 불가사의하다. 개별적으로는 그렇게 똑똑할 수가 없다.

신변문제나 업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면 시쳇말로 똑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통찰력과 직관력 그리고 애국심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우리사회의 최고 엘리트다.

그러나 행정 전반이나 조직의 권한문제를 말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내편 네편으로 갈라지며 횡설수설하는 것이 그렇게 멍청해질 수가 없다. 뺏기거나 포기하거나 줄인다는 말은 용납할수 없는 ‘불경한’ 단어다. 오로지 팽창 확대의 조직논리가 하나님이고 유일한 슬로건이다.

같은 부처 안에서도 국(局)이 다르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 같은 국이라도 과(課)에 따라 심한 충돌이 일어나고 안면몰수하는 것이 다반사다.

관료하면 트레이드 마크처럼 따라붙는 군림, 무사안일, 불친절과는 또 다른 특권 엘리트집단의 낯 뜨거운 모습이다. 정부개편안을 놓고 지금 관청의 한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생결단식의 ‘행태’는 정말이지 딱하고 보기에도 민망하다.

부처마다 비상 대책회의가 열리고 연줄이 총동원되고 태스크 포스까지 만들어 조직개편의 불리한 내용을 뒤집는 논리개발을 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행정공백이 극심하고 국정이 표류하고 있어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내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인데 국민이 안중에 들어올 리가 없다.

어떤 부처에선 무슨 비밀작전하듯 접촉조 포섭조 홍보조를 만들고 또 어떤 중앙부서는 로비를 위해 외국정부와 공식회담을 연기한 곳도 있다니 그저 입이 딱 벌어진다. 이런게 관료집단의 지금 모습이다.

기획예산위원회가 46억원의 용역비를 들여 완성한 행정조직 개편안도 그렇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금을 들여 민간의 경영진단을 왜 받았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우선 지향점이 불분명하고 통폐합의 대상이 되는 부처의 선정이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는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감사원과 국가정보원 같은 힘있는 기관은 아예 언급조차 없고 검찰조직의 직급조정 문제는 진단에는 들어 있었으나 발표내용엔 빠진 배경도 석연찮다.

그뿐만 아니다. 재정경제부나 국방부 교육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등과 같이 시대변화에 맞춰 마땅히 대수술을 해야하는 대형 부처는 근본적인 손질없이 적당한 선에서 위상을 유지하게끔 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2차 행정 개편시안은 1차 때의 시행착오와 미흡함 때문에 행정서비스의 향상과 미래시대의 변화에 주안점을 둔 유연한 조직에 대한 기대가 절실했는데 결국 공허한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흔히 세상변화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집단은 개인이고 그 다음이 기업경영자라고 한다. 변화의 현장을 경영자가 반응하는데는 5년의 시차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관료들은 어떨까. 정치인은 10년이고 관료들은 15년이 처져 역시 맨 꼴찌라고 한다. 사태의 변화를 알아채는데 15년이 걸린다면 솔직히 기대할 게 뭐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국민을 깔보고 바보 취급한다면 그런 낡은 관료들은 천명이든 만명이든 몽땅 퇴출시키는 데서 행정개혁은 출발해야 한다.

이인길<경제부장>kung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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