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풍, 누구 말이 맞나?

  • 입력 1998년 12월 1일 19시 25분


이른바 총풍사건이 예민한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정치권도 난기류에 휩싸였다. 첫 공판에서 한성기(韓成基)피고인이 대북접촉 사실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측에 사전 사후에 보고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이총재의 인지(認知) 여부가 다시 사건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총재를 직접 조사할 태세지만 한나라당은 ‘사실무근의 날조’라고 반발하며 예산안 처리와 경제청문회에 대해서도 더욱 강경해졌다. 정치가 다시 불안의 수렁에 빠질 조짐조차 보인다.

본란이 거듭 강조했듯이 이 사건의 핵심은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데 있다. 이총재의 인지 여부는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서 결코 소홀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느 쪽으로도 단정하기 어렵다. 적어도 세 갈래의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검찰 추정대로 한씨의 보고서가 이총재에게 전달됐는지, 이총재의 수행비서나 운전기사에게만 전해졌는지, 한나라당 주장처럼 ‘이회창 죽이기’를 위한 ‘날조’인지, 우리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검찰이 공판에서 제시한 한씨의 보고서는 중요한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이것을 컴퓨터 조작에 의한 문서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점이다. 한씨의 진술은 법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단 증거능력을 갖는다. 그러나 한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진술을 번복한 전례가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려운 까닭도, 진실이 반드시 밝혀져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원은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가려내야 한다.

이총재에게는 이 사건이 정치생명에 관련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총재와 한나라당은 진실규명을 위해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옳다. 의혹을 남겨두어서는 정치적 장래도 밝아질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주장처럼 ‘조작’이라면 조사를 피할 이유가 더욱 없다. 조사에는 협조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일축하는 처사는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아울러 검찰은 이총재가 원내 최다의석을 가진 야당의 총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추호라도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한씨의 법정진술은 어디까지나 사법적 차원에서 진실이 가려져야 한다. 지난달 청와대 총재회담을 앞두고 여야가 다짐했듯이 정치권은 사법기관의 처리결과를 지켜보아야 마땅하다. 무절제한 정치공방으로 진실을 왜곡하거나 희석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로 예산안 처리나 청문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국회운영까지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도 곤란하다. 재판은 재판이고 국회는 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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