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잘못된 선택

  • 입력 1998년 8월 4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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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국회의장 경선 패배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총재단과 3역의 총사퇴로 지도부가 없어졌고 어제 의원총회도 당의 진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 바람에 국회는 다시 공전하면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국회정상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던 의장경선이 또 다른 국회파행의 시발이 됐다. 거대야당의 표류가 국회와 정치의 표류를 낳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총회가 그렇게 끝남에 따라 대여(對與)협상 중단과 국회참여 거부라는 기존 당론은 살아남게 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그런 결정은 잘못된 선택이다. 의장경선을 먼저 제의해 3차투표까지 해놓고 경선에서 지자 당선자의 인사말도 듣지 않은 채 퇴장한 것부터 비이성적이다. 여야가 이미 합의한 부의장 선거와 총리인준안 처리를 거부한 것도 바른 처사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의회정치의 원칙에도, 일반의 통념과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경선은 승복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졌다고 불복하며 여야합의까지 뒤집을 바에야 경선은 뭣하러 했는가.

한나라당은 상식과 순리를 존중해 국회는 국회대로 가동해야 한다. 여권의 회유가 있었든, 패배에 따른 좌절로 화가 나든 그것이 국회거부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야당은 명분을 먹고 산다. 역대 야당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명분에서 강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국회에 들어가 총리인준안을 가부간 처리하고 원(院)구성에 응해야 한다. 그런 바탕에서 모색해보면 당의 진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내부결속을 위해 강경노선을 취하는지 모르지만, 그동안 강경노선이 결속을 가져왔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대로는 한나라당이 여론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국회참여와 별도로 내부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지도부 총사퇴에 따라 8·31 전당대회까지는 과도체제로 갈 것 같지만 과도체제에는 한계가 있다. 중진들이 나서지 않으면 당을 되살리기 어렵다. 중진들은 당권에만 집착하지 말고 당의 활로를 찾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옳다. 이탈표가 당의 예상보다 훨씬 많이 나온 현실을 바로잡고 구심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당이 있어야 당권도 있다.

한나라당은 과감한 자기개혁을 통해 책임있는 건전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해서는 당의 장래도, 나라의 정치도 불행해진다. 야당이 건강해야 정치가 건강해지는 법이다. 한나라당이 건전야당으로 거듭나느냐, 또 하나의 거품정당으로 끝나느냐는 요 며칠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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