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석일/대만경제의 저력

  • 입력 1998년 7월 20일 19시 43분


지난해 7월초 태국에서 불기 시작한 외환 금융위기가 동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있다. 환율이 폭등하고 주가가 하락하는 한편 경제성장률도 크게 둔화되면서 실업률이 증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도 대만은 상대적으로 그 영향을 덜 받고 있다.

최근 대만 경제의 동향을 보자. 거시경제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경제주체 모두 안정된 경향을 보여준다.

우선 거시경제지표를 보면 외채부담이 거의 없는 가운데 8백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다. 높은 경제성장률, 안정된 물가, 흑자기조의 경상수지 등 거시경제의 3대 지표가 호조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과거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다소 둔화되었다고는 하나 매년 6% 내외의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 전후로 안정돼 있다. 경상수지의 한해 흑자규모는 1백억 달러에 이른다.

▼건전한 경제주체 자랑

미시적으로 경제주체들도 이전의 경제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통한 사업의 국제화 열기는 더욱 뜨겁다. 나아가 대만 정부는 이번 아시아 경제위기를 기회로 삼아 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업체들의 진출을 적극 도모하고 있다. 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나라에도 대만업체들의 사절단이 두차례 방문한 바 있다.

그러면 이같은 대만 경제의 저력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우선 경제주체들의 자립정신과 근면 검소한 태도가 바탕이 되고 있다.

대만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3천달러에 달하지만 그들의 생활수준은 놀라울 정도로 검소하다. 수도인 타이베이 시내의 거리 환경이 빠르게 현대식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화려하지 않으며 거리를 가득 메운 스쿠터의 소음과 공해는 어쩌면 지저분한 느낌마저 준다.

대만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에 의지하기보다는 독자적으로 경쟁력 향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제조업체의 평균 부채 비율은 100% 내외에 그치고 있다. 아울러 자기 분야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의 세계 최대 제조전문(Foundry)회사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fg.Co)가 그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가 가공조립부문의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지향적 대량생산형태로 발전해 왔다면 대만은 대기업은 공기업 형태로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중소기업이 다품종 소량형태로 수출을 주도해 왔다. 실례로 가전산업과 자동차산업을 꼽을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앞장서서 경제를 이끌기보다는 민간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며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고양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사전적인 금융자원의 배분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금융은 민간에 맡기고 조세제도를 통한 사후 지원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술개발과 입지공급 등 민간이 하기 어려운 사업인프라 구축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업기술원(ITRI)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에 노력하고 산학연 협력을 통한 중소기업들의 기술 제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신추(新竹)과학공업단지를 성공리에 운영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개발이 낙후된 남부 지역에도 첨단공업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산학연 협력 기술제고

또한 정책입안과 집행도 장기전략 아래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퇴색한 감이 있으나 쑨원(孫文)이 주창한 삼민주의(三民主義)가 대만경제정책의 기본이 되어 왔다. 지금도 대만 정부는 1986년에 구축된 자유화 국제화 제도화라는 장기 경제운영기조를 계속 견지하면서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경제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년들어 수출이 감소세를 보이면서 대만경제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미 상반기에 전년대비 7%의 마이너스 증가세를 나타내며 비상이 걸렸다.

대만 정부는 적극적인 시장개척을 통하여 수출 증대를 적극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노력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환율조정을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도 검토하고 있다.

대만정부는 95년부터 홍콩의 중국반환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중심지로 부상하려는 비전 아래 ‘아태운영센터’ 10개년 계획을 추진중이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다 기업들의 몸에 밴 자구노력이 하나가 되어 동아시아 경제위기 속에서 대만경제가 그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홍석일(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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