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쇠고기 개방 압력

  • 입력 1998년 7월 17일 19시 44분


소값 폭락으로 국내축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축산업이 기반째 무너져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 등 쇠고기 수출국들이 올해 수입쿼터 이행과 추가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세나라는 최근 한국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합의한 올해 쇠고기 수입쿼터 18만7천t을 제때 수입하지 않고 있다며 별도의 협상을 갖자고 요구해 왔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실제로는 통상압력이다.

미국 등의 요구는 크게 네가지다. 올해 수입쿼터를 채울 수 없으면 2001년으로 되어 있는 시장개방 일정 단축, 수입관세 대폭 인하, 쇠고기 내외가격차 보상제도 폐지, 수입쇠고기 판매장소 제한규정 철폐 등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중 수입육 전문점 제도 폐지 이외의 다른 사항들은 사실상 수용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이렇다. 현재 국내 산지 소값은 5백㎏짜리 큰소 한마리가 1백70만원, 송아지는 35만원 수준이다. 젖소 송아지는 5만∼7만원으로 개값의 절반수준에도 못미친다. 지난 연말과 비교해 30%가량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한파와 함께 소득이 줄면서 쇠고기 소비량이 크게 줄었다. 수입쇠고기 소비량은 55.6%나 감소했다. 한우값은 폭락한 반면 수입쇠고기값은 환율 상승으로 값이 비싸져 소비자가격 자체가 역전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값 안정을 위해 올들어서만 한우 18만여마리를 수매했다. 또 사육마릿수를 줄이려고 그동안 금지해 왔던 농가 의뢰도축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아직도 50만마리 정도가 과잉상태다. 올 쇠고기 수급 전망 역시 작년도 이월재고가 과다한데다 소비는 부진해 10만t가량의 공급과잉이 예상되고 있다.

실정이 이런데도 수입쿼터를 지키라는 요구는 무리다. 수입쿼터는 최소 수입물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허용량이다. 수입과정에서 제도적인 규제만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측이 쿼터를 수입의무사항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쇠고기 소비량이 급격히 줄어 산지 소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기왕에 수입한 쇠고기도 처분할 길이 없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 쇠고기를 더 사달라는 것은 억지다. 더구나 수입주체가 민간기업인데 정부가 대신 수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시종 당당하고 일관된 논리로 협상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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