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백년만의 귀향…「심수관家 도예전」개막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조선 도공의 후예 심수관가(沈壽官家)의 ‘4백년만의 귀향’도예전은 작품내용을 넘어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4백년전 임진왜란 말기에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그동안 이국땅에서 이룩한 작품상의 변화와 성공의 자취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조선도공의 예술혼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사쓰마야키(薩摩燒), 세계적으로는 사쓰마웨어로 잘 알려진 심수관가는 한 도공과 그 후손이 14대에 걸쳐 면면히 도예의 맥을 이어왔을 뿐만 아니라 일본을 대표하는 도예의 명문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감동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대결관계에 있던 이국땅에서 대대로 한국인 성(姓)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그 예술혼이 우리와 깊은 ‘마음의 끈’으로 연결돼 있음을 느끼게 한다.

심수관가의 도예작품들은 대작이면서도 흠잡을 데 없는 예술성이 우선 돋보인다.전시장 입구에 놓여 있는 12대 심수관의 용장식 대화병은 1백22㎝ 높이의 큰 항아리 만한 꽃병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번 전시 내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12대 심수관의 작품은 청화백자가 있는가 하면 대형이면서도 정교한 코끼리상이 있고 채색 도자기도 포함돼 있어 그가 심수관가의 중흥조(中興祖)임을 한눈에 알게 해준다.

그러나 전시작품 중 무엇보다 우리에게 와닿는 것은 4백년 동안 심수관가에 전해져온 초대 심당길(沈當吉)의 작품 ‘히(火)바카리 다완(茶碗)’이다. 조선시대 사발을 연상케 하는 이 다완은 ‘불만 빌렸다’는 작품명에서 나타나듯 흙도 유약도 기술도 조선의 것이라는 조선도공의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함께 전시된 심당길의 망건은 왕관처럼 가주(家主)에게만 전해오는 심수관가의 가보로서 망건을 물려받을 때 누구나 망건에 스며있는 초대 심당길의 눈물과 땀을 잊지말도록 당부한다는 일화는 이번 전시가 주는 또다른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영달을 바라지 마라’ ‘금전을 좇지 마라’ ‘그저 근면하게 일하라’는 심씨가의 가훈은 IMF체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고국민들에게 주는 충언으로도 경청할 만하다.

올 여름 국내 미술계의 최고 행사로 평가받고 있는 이번 전시회는 21세기를 앞두고 한일 문화예술교류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작품의 상당수는 일본적인 예술색채가 농후하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조선도공과 그 후예들의 혼이 그대로 느껴진다. ‘4백년만의 귀향―일본 속에 꽃피운 심수관가 도예전’이 가교가 되어 한일 두 나라 사이에 도예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교류도 활발히 이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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