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기업 개혁

  • 입력 1998년 6월 21일 20시 26분


우리나라 공기업의 현주소가 감사원 특감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짐작했던 일이지만 많은 공기업들이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민간기업의 악습을 그대로 흉내냄으로써 총체적 부실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한다. 일부 경영상태가 좋은 곳도 있기는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전반적 공기업 실태는 정부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지적해 주고 있다.

특감결과는 대부분의 공기업이 각종 제도적 지원과 시장에서의 독과점적 위치를 살리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혜성 강한 이런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사업관리 인력운용 회계처리 등 각 부문에서 비합리적 경영으로 부실에 빠졌다. 방만한 투자, 민간기업보다 더 높은 임금인상률, 주먹구구식 예산집행 등은 부실경영의 일부에 불과하다.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아까운 돈이 주인없는 회사에서 무책임하게 낭비된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회계규정을 악용해 적자를 내고도 흑자처럼 장부를 꾸민 일이다. 적자를 낸 공기업 경영책임자가 자신의 능력과 실적을 호도하기 위해 흑자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개된 비밀이었다. 공기업을 개인의 출세도구로 전락시키면서 국민에게 재산상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 문제는 또 공기업체장에 대한 엄정한 인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이처럼 공기업부실의 주요 원인이 경영진의 무능력과 무책임에서 비롯됐는데도 낙하산임명 등 인사문제에 감사원의 언급이 없는 것은 유감이다.

이번 특감결과는 공기업에 대한 개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개혁에 소극적인 채 기업과 은행 등 민간부문의 개혁만 다그칠 수는 없다. 정부는 감사자료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상세히 고려해 엄격하고 단호한 대수술에 임해야 한다. 벌써 일부 공기업과 주무부처가 반발하거나 구명을 호소하고 다니는 것은 우려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감사원이 발표를 거부한 부실 공기업 명단을 당당하게 내놓는다면 이런 부작용은 예방될 수 있을 것이다.

개혁을 제대로 이루려면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결합재무제표의 도입이 공기업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주무부처가 아닌 제삼의 기관이 개혁작업을 주도해야 객관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도 중요하지만 공기업 특유의 존재이유가 있는 만큼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내부적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떠들썩하게 시작되고 흐지부지됐던 공기업개혁이 이번에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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