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문화 바꾸자 ④]『과격 폭력시위 악순환 고리끊자』

  • 입력 1998년 5월 7일 20시 05분


《‘근로자의 날’인 1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과격 폭력시위는 세계와 국민을 놀라게 했다. 밑바닥을 헤매는 경제 회생을 위해서라도 구시대의 악습인 폭력시위는 더이상 안된다. 집회와 시위는 적법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김일수(金日秀·52)고려대교수 박헌수(朴憲洙·48)한국노총부위원장 이성도(李成道·41)민주노총조직강화위원장 임영화(林榮和·34)변호사 등 4명의 좌담을 통해 우리의 시위문화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더듬어본다.사회=송대근 사회부편집위원》

사회〓우리 사회에서는 집회와 시위는 곧 폭력성을 동반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왔습니다.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이 패턴에 대해 먼저 말씀하시지요.

김일수〓오랜 군사독재 기간중에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인권을 빼앗긴 사회 계층들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속돼 왔습니다.

박헌수〓과거 정통성이 없는 정권들은 집단적인 시위를 두려워해 무조건적으로 과잉진압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으로서는 시위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과잉진압에 대해 폭력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폭력의 악순환 고리를 가져왔다고 봅니다.

▼ 경직된 법집행 개선돼야 ▼

사회〓일부에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개정 필요성 등을 지적하고 있기도 한데 현행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성도〓제도적으로 시위현장에서 경찰에 자의적인 판단을 너무 많이 허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권력의 과잉표출은 대응폭력을 불러올 수 있으므로 경찰의 현장 판단을 최대한 줄이는 제도가 정착돼야 합니다.

김일수〓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보호보다는 통제에 중점이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 경직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경찰과 검찰의 태도도 시위가 폭력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시위 참가자들의 기본적인 의식을 짚어볼 필요는 없을까요.

박헌수〓시위 참여자가 많아지고 시위의 열기가 높아지면 시위를 준비한 집행부가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요구가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위 참여자 중 일부는 문제가 커져야 호소가 강력해지고 일이 빨리 해결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 시위 참여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또 정부도 집회와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도록 보호하고 협조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임영화〓경찰이나 시위 참여자 모두 조그마한 충돌에 쉽게 흥분하는 관성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양쪽 모두 시위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안돼 있기 때문입니다.

박헌수〓그런데 최루탄을 맞고 나면 잘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김일수〓선(善)한 뜻을 이루기 위한 시위라면 뜻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시위 참여자들이 폭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대량으로 붙잡혀 가고 대량으로 공권력에 매를 맞는 모습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동정을 불러일으켜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박헌수〓반대로 폭력적인 시위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경찰과 정부가 먼저 인내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도 시위 참여자들이 폭력을 행사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이성도〓시위참가자 중 통제권 밖에 나가는 소수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지도부가 경찰보다 더 강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질적 권한을 가진 정부가 집회와 시위를 민주사회의 기본 권리로 생각, 시위를 보호해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김일수〓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의 단체들이 국민이 불안해 하는 이 시기에 공식적으로 먼저 비폭력적 시위를 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국민을 안심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외국인 투자 막아선 안돼 ▼

사회〓6일 법무부장관이 새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5대 방침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위가 많아지면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이성도〓법무부장관이 신고된 집회라도 공공성에 위배되면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정부와 생각이 다른 집회는 무조건 원천봉쇄한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봅니다.

박헌수〓시위를 리드하는 지도부는 처음부터 폭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폭력시위는 시위 참여자나 정부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기실업이 지속되는 엄청난 상황에서 일방적인 해고에 대한 분노와 정부 재벌에 대한 불만은 높아져 가는데 책임지는 관료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 노동계를 더욱 분노케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시위는 87년 6·29선언 전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지금은 생존권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일수〓사회적인 카타르시스를 위해 노동자들이 참담한 심정을 토로할 수 있는 광장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봅니다. 시위 참여자들도 폭력시위를 염려하는 국민의 여론을 의식해 스스로 절제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정부와 시위 참여자들의 노력이 합쳐져야만 시위문화가 바뀔 수 있습니다.

이성도〓기본적으로 비폭력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폭력시위를 얘기할 때는 공권력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돼야 한다고 봅니다. 폭력시위의 문제는 경찰과 시위 참여자들 서로가 신뢰하지 않고 적대시하기 때문입니다. 언론과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신뢰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면 새로운 집회 시위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국민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임영화〓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집단적인 불만표출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나 시위대가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의견표출의 통로를 좁게 하면 오히려 불만의 강도가 심화돼 폭력시위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박헌수〓법과 제도는 집회시위를 보호해주는 측면에서 작동해야 합니다. 억울하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실컷 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우리도 평화적인 시위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오늘같은 토론은 매우 유익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같은 자리가 자주 마련돼 새로운 시위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끝―

<정리=이현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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