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고국찾는 조선도공의 예술혼

입력 1998-05-01 21:00수정 2009-09-2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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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九州) 남단 가고시마(鹿兒島)의 히가시이치기(東市來)에 있는 조선도공의 후예 심수관(沈壽官)씨 집은 방문객들에게 많은 인상을 심어 준다. 우선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이 뛰어난 실용성과 내적인 아름다움에 반해 내뿜는 탄성이 잊히지 않는다. 태극기를 위에 새기고 ‘대한민국명예총영사’라고 쓴, 정문 입구 기둥에 걸린 현판도 또렷이 기억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심씨의 안내로 정원에 있는 2개의 조그만 비석 앞에 섰던 일이다. 높이 60㎝ 가량의 비석에는 놀랍게도 한글로 ‘반녀니’ ‘져나니’라는 임진왜란 당시 끌려왔음이 분명한 여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역만리에 잡혀와 천비(賤婢)취급을 받았을 것이 분명한 두 여인의 한글 비석을 보는 순간 1대 심당길(沈當吉) 이래 심수관가(家)의 4백년 역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한국도자기 일본 도래 4백주년 행사를 준비중인 14대손 심수관씨가 선조가 일본 땅을 밟은 후 이룬 도자기의 모든 것을 고국민에게 보고하는 전시회를 서울에서 갖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7월초에 열릴 전시회에는 ‘불만(히바카리)’이라는 이름의 심당길이 만든 찻잔도 진열된다고 한다. 흙 유약 등은 모두 조선에서 가져온 것이고 불(火)만 일본 것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 도공의 혼이 느껴지는 작품명이다.

▼“전시회 명칭을 ‘역대 심수관 보고전’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의 와중에서 전해진 조선의 문화가 이국 풍토 속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고하고 “고국민의 칭찬도 받고 싶어서”라는 심씨의 설명이다. 심수관가의 명품 도자기를 볼 수 있는 기회이자 무고하게 잡혀간 수만명의 조선인 혼이 깃들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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