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換亂책임자 사법처리 반대]직무유기죄 성립안돼

  • 입력 1998년 4월 14일 08시 09분


검찰이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등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죄형법정주의를 항상 염두에 두어온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에 개운치 않은 것이 남는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성수대교 붕괴같이 큰 사건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 그것도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존재했다.

검찰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국민의 법감정이 있는데 기소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막연한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누군가에게 수갑을 채워왔다. 이런 일들을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개명천지에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몇몇 경제 관료를 광장으로 끌어내 돌을 던지고 화형시킨다면 분노한 국민은 일시적 만족을 얻겠지만 이는 또하나의 기만에 불과하다. 그들을 죽인다고 환란(換亂)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죽임을 당한 사람들 외에 정치적 행정적으로 책임져야 할 많은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목적만 달성될 뿐이다. 직무 유기죄가 성립되려면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과 객관적으로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직무 집행의 의사로 직무를 수행한 이상 태만 착각 등 일신상 또는 객관적인 사유로 직무 집행을 소홀히 하여 부실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해도 직무유기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없는데 국가부도라는 상황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고 60년대 이후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에 익숙한 경제관료들에게 과연 이번 외환위기에 대해 미필적이든 확정적이든 직무유기의 고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경제정책은 수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그 결과가 나쁘다고 하여 정치적 행정적 책임 외에 형사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누가 자신의 정책에 대해 확신을 갖고 추진할 수 있겠는가.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개선해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형사소추에 있어서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 원칙들이 엄격히 지켜져야 하고 전근대적인 결과책임론은 지양돼야 하겠다. 이것이 문명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김재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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