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기과 의사로서 매일 환자들 내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에는 남자에게도 비키니 같은 내의가 종종 눈에 띈다. 특히 최근 몇년간의 변화는 뚜렷하다. 종래의 순백색 일변도에서 차분한 색이 선을 보이더니 최근에는 원색을 써서 매우 강렬하고 도전적인 색들이 어우러져 있기도 하다. 디자인의 변화는 더욱 파격적이다.
「혹시 부인 것을 입고 온 거 아닙니까」라는 질문이 곧 나올 듯 싶을 정도로 몸을 가리는 부분이 엄청나게 작아졌다. 그래서 고환과 음낭은 몸에 착 달라붙게 됐다. 또 남성 내의 고유의 출입구가 생략되어 남성용인지 여성용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졌다. 이런 남성 내의가 패션의 첨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의학적으로는 반남성적이고 비인간적이며 비위생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남성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성답게 하는 기관은 고환이다. 고환은 남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고환은 체온보다 3∼4도 낮은 온도에서 재대로 기능을 한다. 그래서인지 조물주는 몸안에 있는 여성의 난소와는 달리 남성에게는 음낭이라는 고환주머니를 하나 만들어 몸밖에서 시원하게 고환을 보관하도록 하였는지 모른다. 남성 다섯명 중 한명꼴로 볼 수 있는 정계정맥류라는 병이 있다. 고환에서 막 나온 정맥이 밸브의 이상으로 큰 정맥으로 원활히 나가지 못한 결과 자연히 확장되고 길어지는 병이다. 그래서 이 정맥은 고환 주위에서 꾸불꾸불한 덩어리로 만져진다.
이 병을 방치하면 고환이 작아지고 정자가 잘 만들어지지 않아 불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유는 확장되고 길어진 정맥내의 따뜻한 혈액이 고환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심하면 수술을 하거나 고환을 냉각시키는 장치를 이용해야 한다. 앞서 설명한 남성의 생리를 생각해 보면 치료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일부 패션내의는 바로 이러한 남성의 생리가 무시된 채 만들어진 것이다. 조물주가 몸 밖으로 내놓은 고환을 굳이 몸쪽으로 밀착시켜 온도를 높인다면 이는 실로 남성에게 해로운 발상이다.
옛날 인도에서는 남성피임법으로 고환을 뜨겁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오늘날 패션내의는 이런 남성피임법의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멋있는 옷을 입으면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더라도 남성내의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렇게 화려하게 만든 것일까.
남성의 내의는 생리적으로 남성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져야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백재승<서울대의대 비뇨기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