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가까이 다가오니 고향이 그리워진다. 서울의 생활이 바쁘다 보니 고향을 마음속으로 애절하게 그리워만 할 뿐 쉽게 갈 수없었다. 반가워할 일가친척들도 다들 떠나버렸고 가깝게 지내던 친지들도 흘러가버린 세월만큼이나 멀리 느껴진다.
지리산의 양지바른 산자락에 자리잡은 내고향 구례는 너무나 평화스럽고 아늑했다. 내가 태어나서 잔뼈가 굵은 안태본(安胎本)이니 왜 아니 그립겠는가. 고향에서 20년 자라고 서울에서의 삶이 40년 가까이 되지만 아직도 꿈을 꾸면 고향에서 농사 짓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일이 생생하게 나타나곤 한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심속에 천진난만하게 자랐기에 지금도 서울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짙은 향수에 젖곤 한다.
이렇게 사무치도록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귀향이 어려운 것은 남겨둔 근거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팔을 벌려 맞아 줄 일가친척이 있든지, 피곤한 몸 이끌고 가 허물없이 누울 집이라도 있든지, 아니면 둘러볼 논밭이라도 있었던들 고향을 찾지 않고는 못배겼을 것이다.
작년 5월 중순쯤 그간 잊고 살았던 선산이 걱정돼 36년만에 고향을 찾았다. 낮에 일을 마친 형제들이 영등포에서 밤 9시에 만나 승용차로 귀향길에 올랐다. 옛날에는 전주 남원을 거쳐 밤티재를 넘어야 했으나 지금은 터널이 생겨 험한 고개를 넘지 않아도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36년 전 모습은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았다. 보고싶고 그리워했던 고향은 간데 없고 그곳에는 산 설고물 선 타향이 덩그렇게 자리잡고 앉아 서먹한 표정으로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듯했다.
저수지가 마을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바로 코 앞에 바짝 당겨져 있는 듯 느껴졌다. 동네 어귀에 자리잡고 있던 높다란 돌탑도 코납작이처럼 작아 보였다. 20년동안 정들었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돌 하나에서도 정이 모락모락 피어날 줄 알았는데….
36년의 세월은 고향의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 『고향이 그립지도 않더냐. 왜 그리도 고향을 외면하고 살았느냐』고 뾰로통한 모습이기에 『와보지 못하는 고향이 더 애절하게 그립더라』고 달래보았다.
변 정 용(서울 중구 필동3가 55의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