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에 이어 현대 삼성 LG 선경 쌍용 등 국내 유수 재벌들이 소비재 수입자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그룹의 소비재 수입중단 또는 자제선언은 국제수지 방어가 우리경제의 최대현안인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다.
지금까지 재벌들은 불경기에 따른 경영실적의 부진(不振)을 상당부분 소비재 수입과 판매로 메워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 위해 외제상품 수입에 앞장서 돈벌이가 되는 물건이라면 가리지 않고 들여왔다. 그 결과 내수시장 잠식률이 90%를 넘는 외국상품도 많이 나타났다.
관세청의 통계숫자는 수입에 앞장섰던 재벌의 영업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해 30대 재벌그룹이 수입한 소비재는 23억달러(1∼11월)로 총소비재 수입액 1백54억달러의 15% 수준에 이른다. 어떤 재벌은 소비재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60%, 수출액의 74%를 차지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30대 재벌그룹중 25개 재벌이 수출보다 수입을 더 많이 하는 「무역적자 재벌」이었다. 지난해 1∼9월중 30대그룹의 수출은 4백59억달러에 그친 반면 수입은 5백75억달러를 기록, 1백16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보였다. 이같은 적자규모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적자의 77%에 달한다.
지난 한해 경상수지 적자가 2백30억달러, 무역수지 적자만도 2백4억달러를 기록한 가운데 외채는 1천억달러를 넘어섰다. 외채 무역수지적자가 모두 위험수위다. 올해도 경상수지의 대폭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무역수지적자만도 1백9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면 우리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다면 수입을 줄일 수밖에 없다. 수출의 주역도 재벌이지만 수입의 주역도 재벌이다. 소비재수입에 재벌이 앞장설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정부와 국민이 나서서 막을 수도 없는 처지다.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다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까지 가입한 마당에 정부가 수입품 추방에 앞장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위기로부터의 탈출과 경상수지적자 개선의 실마리는 경제주체 모두의 근검 절약과 고통분담에서 찾아야 한다. 그 중에도 우리사회에 만연된 과소비풍조를 떨쳐버리지 않고는 경제회생은 어렵다. 재벌의 소비재 수입자제가 일과성이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불경기 여파로 수입해봐야 별로 팔리지도 않는 시점이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도 재벌이 사치성소비재 수입 따위에 눈돌리지 않을 때 참다운 고통분담의 뜻이 있다.